종의 기원에서 유전자 편집까지
생명과 유전 현상의 비밀을 풀어가는
탐정 같은 의학자들의 이야기!
그림 그리는 의사의 ‘이토록 재밌는 의학’ 시리즈 완결편!
의학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의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 ‘이토록 재밌는 의학’ 시리즈의 완결편 ‘진화와 유전학 이야기’편이 출간되었다. 의학의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재미있는 이야기에 녹인 이 시리즈는 현직 의사인 저자가 어려운 의학 지식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정리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 직접 그린 귀여운 삽화로 인기를 끌어왔다.
첫 번째 책,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의학의 역사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다뤘다면, 두 번째 책,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는 면역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적인 사실들과 다양한 면역 이론들을 소개했다. 이번 《이토록 재밌는 진화와 유전 이야기》에서는 생명과 유전 현상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학자와 의학자들의 숨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은 먼저 식물학자 린네가 ‘종’이라는 개념을 처음 떠올렸던 1735년으로 되돌아가 최초의 개념들이어떻게 탄생했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같이 살펴본다. 그리고 1859년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이 생물의 진화를 촉진시키고, 형질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걸까? 많은 이론과 생각이 부딪히면서, 현대 유전학의 기틀이 잡혀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선배들이 남긴 작은 단서로 생명과 유전 현상의 비밀을 탐정처럼 풀어가는 의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생물의 분류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생물의 진화를 부추겼는지, 멘델의 법칙이 유전학에서 왜 중요한지, DNA의 구조는 무엇이고, 어떻게 복제되는지 등등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생명과학 지식을 알차게 담은 이 책은 교과서의 내용을 더욱 재밌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학생뿐 아니라, 진화와 유전 현상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에게 탁월한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다윈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멘델이 풀다
흐름으로 읽는 유전학 이야기
“왜 자녀들을 부모를 닮는 걸까?” 이 질문은 고대부터 계속된 질문이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과학적인 추론 끝에 “자식에게 건네지는 부모의 액체 속에 틀림없이 미지의 물질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리고 그것을 작은 ‘씨앗’이라고 불렀다. 다윈은 이 씨앗을 ‘제뮬’이라 이름 짓고, 부모의 제뮬이 물감처럼 섞여 자식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오류가 있는 발상이었지만, 이 이론(범생설, pangenesis)을 따서 유전자(gene)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다윈에게는 풀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만약 돌연변이로 생긴 유전정보가 물감처럼 희석되거나 섞여서 전달된다면 몇 세대를 내려간 뒤에는 그 유전정보가 점점 묽어져 사라질 것이다. 유전정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어떤 독립된 물질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 수수께끼를 푼 사람이 바로 독립의 법칙과 분리의 법칙을 발견한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이었다. 그는 완두 교배 연구를 통해 유전물질은 섞이거나 희석되지 않고, 세대를 건너도 언제든지 다시 표현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처럼 과학은 과거의 지식을 바탕으로 진실에 한 걸음씩 나아간다. 동료가 남긴 연구가 풀리지 않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토록 재밌는 진화와 유전 이야기》는 마치 선배가 남긴 숙제와 문제를 후배가 해결하듯, 현대의 유전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학자와 이론의 전후관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유전학에 대한 사고와 지식이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책은 또한 진화와 유전학의 중요한 발견을 이룬 주인공들의 면면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내며 흥미로운 일화를 빼놓지 않는다. 반복되는 실험 실패에도 “괜찮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항상 뭔가를 주울 수 있거든요.”라고 말하며 묵묵히 연구를 한 오즈월드 에이버리는 마침내 DNA(핵산)가 유전을 통솔하는 물질임을 밝혀냈다. 유전의 비밀을 풀기 위한 의과학자들의 고군분투를 함께 읽다보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유전현상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저자는 진화와 유전의 비밀을 탐구하는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기존의 단서들을 이용해 탐정처럼 추리하면서 생명의 기원과 유전 현상에 대한 수수께끼를 조금씩 풀어가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모든 비밀이 풀릴 때 쾌감을 느끼듯 왓슨과 크릭이 여러 단서를 모아 “DNA의 비밀을 모두 알아냈어!” 하고 선언하는 부분이 나올 때 그들과 함께 우리 독자들도 지적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일상 속 흥미로운 유전자 이야기에서
고급 생명과학 지식까지 한 권으로 읽는다
2013년 《뉴욕타임스》에 유명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나의 의학적 선택’이라는 기고문이 실렸다. 유방암으로 숨진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 역시 관렴 암유전자인 BRACA1을 갖고 있고, 예방적 차원에서 가슴을 절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선택이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유전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렇다면 과연 유전자의 영향력은 얼마나 크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는 선천적인 본성과 후천적인 노력 중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해야 하느냐에 대한 유전학의 오래된 주제와 연결된다. 책에서 이러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대규모의 쌍둥이 사례를 분석한 한 연구에서는 일란성 쌍둥이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비슷한 지능을 갖는지 파악한다. 인간의 지능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찾는 연구도 소개된다.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단지 아이들 성적을 판단하는 것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본성을 강조했던 우생학자들의 시도가 결국 나치의 인종 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으로 이어졌고, 구소련 과학자 리센코는 본성을 훈련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백만 명의 소련 국민들이 굶어죽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유전학의 양극단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통해 과학의 윤리적인 측면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밖에도 유전학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중요한 검사였던 PCR의 DNA 조각을 증폭하는 기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서래 마을 영아 살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 유DNA 지문법, 유전자의 결함을 근본부터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 기술, 불로장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텔로미어 등,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기술부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유전자 기술의 원리와 이론까지 재미있는 삽화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