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최대의 위기, 인권위는 어떤 인권위원을 필요로 하는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가 기록한 인권위 3년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시끄럽다. 혹자는 인권위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도 한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인권위원 구성원이 바뀌자 인권위 운영에 큰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며 인권위에 기대를 걸고 있는 많은 사람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기에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법 학자이자 인권변호사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가 지난 3년간(2020년 1월-2023년 2월) 인권위 상임위원(차관급, 초대 군인권보호관 겸직)을 역임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권위가 어떤 조직인지, 인권위원은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이 시대에 바람직한 인권위원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인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인권위"라고 불리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의 지식과 기억력에 의존해 집필한 것이 아니다. 취임일부터 퇴임일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일과 인권위의 주요 업무를 기록했다. 그 양이 무려 200자 원고지 6,000장! 저자가 스스로를 인권위 사관(史官)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집요함은 그의 평소 철학인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한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와 삶을 집요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에 기초해 쓴 "일과 삶의 역사"이다.
이 책은 곳곳에서 지난 3년간 인권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이슈에 대한 생생한 뒷이야기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박원순 시장 사건을 처리하면서 저자가 경험했던 고뇌, 세인의 이목이 집중된 탈북어민 강제송환 사건의 처리과정에서의 논쟁, 평등법 제정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경과, 초대 군인권보호관으로서 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인권위 내에서의 갈등 등이다. 책의 2장에 이 내용이 집중적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 사안들을 단순히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일기를 함께 보여주며 사건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더불어 사건의 진상과 미래를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인권위를 거쳐간 많은 인권위원이 있지만, 인권위에 재직하는 동안의 일들을 소상히 기록한 이는 박찬운 교수가 처음이다. 인권위가 맡고 있는 사안들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당되는 것들이다. 이에 이 책은 인권위에 관심을 갖는 인권 관계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에게 충분히 가닿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 인권위를 이해하고 시민과 함께 걸어가는 인권위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다. 특히 최근의 인권위 사태를 걱정스럽게 보는 이들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인권위원은 어떤 능력과 자질, 그리고 소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