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마로부터 경복궁을 지키려 거든 먼저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하라
2023년 10월 15일, 광화문 현판이 교체되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였던 현판이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로 바뀌었다.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의 형태다. 〈경복궁 영건일기〉를 보면, 고종 2년인 1865년 10월 11일 저녁 8시경에 광화문 현판을 달았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경에 조선 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헐려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되었다. 실로 100여 년 만에 본래의 현판 모양으로 복원된 셈이다. 이번에는 문 앞의 월대까지 복원되었으니, 광화문은 거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았다.
각종 언론매체에 이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보도 내용을 두루 찾아보았다. 그런데 왜 광화문의 현판을 검은색으로 했는지에 대한 기사는 별로 없었다. 경복궁의 얼굴 격인 광화문 현판을 아무 개념 없이 제작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광화문 현판의 검은 바탕은 물의 상징이다. 한마디로 궁궐의 화재를 예방하려는 물의 의미다.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하려는 목적으로 음양오행에서 물의 색인 검은색을 선택한 것이다. 광화문을 발굴 조사하여 형태는 거의 복원하였지만, 내용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 주고 있는지 좀 의문이 든다. 이 책을 펴낸 이유다.
목조건축물은 불에 취약하다. 우리 선조들은 화재에 가장 취약한 목조건물을 짓고 살면서 어떻게 든 불로부터 집을 지켜내려고 했다. 화재와의 눈물겨운 투쟁기다. 오죽했으면 불을 마귀에 빗대어 화마火魔라 칭했을까? 화재를 진압하는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미리 예방하려는 상징적인 행위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화재 예방의 문화는 한국 사상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궁궐의 현판 하나를 제대로 검증하여 복원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우리 문화재에 담긴 이런 의미들을 제대로 알고, 스스로를 챙기자는 게 이 책의 주제다.
갑골문의 불 화火 자는 불이 타오르는 모양이다. 뾰족뾰족한 산의 모양을 닮았다. 산세가 험한 산을 그래서 예로부터 불로도 보았다. 더군다나 남쪽은 오행으로 불의 방위다. 경복궁에서 보면 전주작인 관악산은 바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불의 산이다. 언제든 궁궐에 화재를 불러일으킨다고 여겨 내내 걱정거리였다. 화마로부터 궁궐을 지켜내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관악산의 화기를 제압해야 했다. 그래서 숭례문 현판도 세워서 달았다. 숭례문崇禮門의 숭崇 자 위에는 뫼 산山 자가 들어있다. 관악산처럼 불이 타오르는 형상이다. 인간이 지켜야 할 오상의 예禮 자는 남쪽인 불의 방위를 뜻한다. 곧 불의 상징이다. 세워진 숭례崇禮 두 자는 바로 불꽃 두 개가 위로 타오르는 염炎 자를 상징하고 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극대화하려고 숭례문의 현판을 의도적으로 세워 단 것이다. 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아내려는 강력한 맞불 개념이다. 불로써 불을 막는 화극화의 상징 체계다. 관악산을 향하는 경복궁 모든 전각의 현판은 물의 색인 검은 바탕이다. 물로써 불을 제압하는 수극화의 상징이다. 또한 관악산 꼭대기에 6각형으로 못도 팠다. 숫자 6은 1과 함께 하도에서 물을 상징한다. 물로써 관악산의 화마를 현장에서 곧바로 제압하려는 상징적인 예방책이었다.
2001년 6월 경복궁 근정전 중수 공사 때, 상층 종도리 하단의 장여 중앙부에서 상량문과 함께 화재 예방을 위한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고종 때,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거의 모든 전각에 상량문과 화재를 예방하는 일종의 부적 같은 3점의 유물들도 함께 넣은 것이다. 순은으로 만든 6각형의 돈 5점, 이들 은제 육각판에는 모서리마다 한자로 물 수水 자가 6자씩 새겨져 있다. 용龍자 천 개로 만든 물 수水 자 2점, 먹으로 그린 용의 그림 1점이다. 모두 물을 상징하는 유물들이다. 물로써 불을 억눌러 제압하려는 상징 체계들이다. 물을 상징하는 부적 같은 유물을 건물의 가장 중요한 도리 부근에 넣었다. 이는 물로써 각 전각의 화마를 사전에 물리치려는 염원이다. 우리 선조들이 경복궁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비보들을 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2, 화마를 막아 저지하는 진언
통도사는 매년 단오절에 소금단지를 차려 놓고 구룡지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이 소금단지들은 모든 사찰 전각의 처마 밑 사방 기둥머리에 올려진다. 소금은 바다를 상징하고 바다는 부처님의 진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직접 동해 바닷물을 떠다 용왕제를 지내기도 했다. 물의 신 용왕님이 화마를 막아 물리쳐, 부처님을 모신 사찰의 금당들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다. 바로 대광명전의 평방에 붙어 있는 항화마진언抗火魔眞言이다.
“우리 집에 손님이 한 분 계시니
바로 바닷속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입에는 하늘을 삼킬 만한 큰물을 머금고 계시니
능히 불 마귀[火魔]를 막아 제압하실 분이다.
吾家有一客 定是海中人 口呑天漲水 能殺火精神”
3, 남산제일봉의 화기를 억눌러 제압하라.
화마로부터 해인사를 지켜내려면 불을 불러오는 남산제일봉의 화기를 억눌러야 했다. 이를 위해서 해인사에서는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로 산의 이름을 바꿨다. 앞산의 불기운을 아예 땅속에 파묻어 버린다는 “매화산埋火山”으로 개명했다. 두 번째로는 대적광전을 중건할 때, 전각의 축을 불의 산인 남산제일봉을 피해 서쪽으로 틀어지었다. 세 번째로는 지금도 매년 단오절에 사찰 경내와 남산 꼭대기에 소금단지를 묻어 화기를 제압하는 방책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