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는 나에게 제2의 삶,
또 다른 인생을 안겨주었다”
나 자신을 번역하며 깨달은 자유의 감각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로 연이어 책을 출간한 후에도, 몇몇 이탈리아어 모어 사용자들에게 끊임없이 왜 ‘너의’ 언어가 아닌 ‘우리’ 언어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마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의 에필로그처럼 느껴지는 첫 번째 에세이 「왜 이탈리아어인가」에, 로마에서 느낀 “이탈리아어가 내 것이 아니”라는 소외감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느냐’는 물음에 랄라 로마노와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에서 발견한 몇 가지 은유를 들어 답한다. 줌파 라히리에게 이탈리아어는 “눈부신 장관을 펼쳐” 보이는 “문”이며, “취약함을 실험”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실명”이며, 새로운 문화/언어에 뿌리 내리는 “접목” 행위에 다름없다.
왜 이탈리아어냐고?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문을 열려고, 다르게 보려고, 나 자신을 다른 존재에 접목해보려고.
─44쪽
한편,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 작가이자 친구인 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소설 『끈』 『트릭』 『트러스트』를 번역하면서 명실상부한 번역가로 거듭난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에는 이 세 작품을 옮긴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서문과 후기도 담겼다. 줌파 라히리는 단어를 선택하는 일과 문화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텍스트에 대한 사랑을 충족시키기에 번역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줌파 라히리가 번역가로서의 자의식과 언어적인 지평을 더욱 확장하게 된 것은 자신이 이탈리아어로 쓴 『내가 있는 곳』을 직접 영어로 번역하면서다. 그는 자기번역이란, 양쪽 텍스트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지면에 쓰인 낱말 하나하나의 유효성을 의심하도록” 강요받는 “가혹한 행위”이며, 작가는 “원본과 파생본의 서열이 해체”되는 경험을 통해 자기 작품의 약점을 발견하고 오류를 바로잡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글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바꾸면서 스스로 “깊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짜릿함에 대해서도 주지한다. 이처럼 줌파 라히리는 자기번역을 반추하면서 번역 행위의 본질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그 작업에서 얻는 즐거움과 경이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나에게 이탈리아어 번역은 내가 사랑하는 언어와 멀리 떠나 있을 때 그 언어와의 접촉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번역한다는 건 한 사람의 언어적 좌표가 달라지는 일, 놓쳐버린 것을 붙잡는 일, 망명을 견뎌내는 일이다.
─115쪽
“나는 번역한다, 고로 존재한다”
번역은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그중 에코와 나르키소스 신화를 비유 도구로 삼은 번역에 대한 성찰이다. 에코는 “남들이 한 말의 마지막 한 토막만을 따라” 하지만, 줌파 라히리는 그에게서 복제를 넘어 “경청하고 복원하는” 열정적인 태도를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번역은 단순히 원작을 “반복”해서 “파생”시키는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의 “상상력과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요하는 연금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번역을 문학의 보조적인 행위로 취급하는 인식에 경종을 울린다.
모든 번역은 다른 무엇도 아닌, 변신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다시 말해 일정한 특성과 요소들이 떨궈지고 다른 것들이 얻어지는, 과격하고 고통스럽고 경이적인 변화로 보아야 한다.
─77쪽
줌파 라히리가 존경할 만한 번역가로서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인물은 안토니오 그람시다. 그는 그람시가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쓴 편지와 수고(手稿)를 읽으면서 다양한 언어와 번역에 대해 지속적이고 끈질긴 관심을 보이는 그람시란 인물을 분석한다. 문화와 언어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는 줌파 라히리에게 번역에 끝없는 열망을 보이는 그람시는 이상적인 번역가로 인식된다. 또,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였던 이탈로 칼비노를 번역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그에게서 “두 개의 텍스트, 두 개의 목소리를 연주하는 번역가의 감성”을 발견한다.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은 어느새 번역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게 된 줌파 라히리가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앞에 두고 써 내려간 글들을 엮은 것이다. 수년간 글쓰기와 번역과 언어에 천착해온 그는, 자신의 기원을 돌아보며 “늘 번역하는 사람이었음을 거듭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번역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지지자인 그의 풍부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문화와 문학의 중심에 놓여 있던 번역의 존재, 그리고 언어의 생생함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