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 여기에 도달한 소설
일찍이 노인 돌봄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본 작가 사에 슈이치가 1985년 간병 살인을 주제로 쓴 파격적인 소설 『돌봄살인(원제:노숙가족老熟家族)』은 출간한 이듬해 〈인간의 약속〉(감독: 요시다 요시시게)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1986년 제39회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될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 독자들에게 가족 간의 살인과 안락사라는 소재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10년 뒤 사에 슈이치가 비슷한 주제로 다시 쓴 소설 『황락(黄落)』(1995년)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 반해, 『돌봄살인』은 유사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대를 앞서갔던 이 과감한 소설은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2022년 6월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말기 환자가 치사량의 약품을 복용해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하는 ‘조력존엄사’ 법안이 발의되어 찬반 논쟁이 불거졌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돌봄을 둘러싼 문제를 어느 때보다 절감했다. 지금 우리가 피부로 직접 느끼는 문제들을 『돌봄살인』은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을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흥미진진하고도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낸다.
부러운 가족, 동정받는 살인자
『돌봄살인』은 3세대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 다츠 할머니가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살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다츠는 치매를 앓아 가족들의 돌봄을 받고 있었으며, 노인과 아이들이 한집에서 함께 지내던 이 단란한 가족은 이웃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이 집안에서 살인이 벌어졌고, 다츠 할머니의 남편 료사쿠는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며 경찰에게 자백한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다가 끝내 살인을 저지른 고령의 료사쿠는 살인 사건의 피의자임에도 이웃들의 동정을 받고, 경찰서에는 그에 대해 선처를 부탁한다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 온다.
하지만 경찰은 이 가족을 취조하며 이 집안사람들 모두가 사실은 평소 다츠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음을 느끼고, 사건에 대한 찜찜함을 떨쳐 내지 못한다. 다츠의 아들 요시오는 부모가 죽으면 아내와 아이들과 다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츠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던 며느리 리츠코는 무력한 다츠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를 투영하고, 그녀의 마지막 소원인 죽음을 이뤄 주고 싶어 했다. 독자는 일가족의 진술을 따라가며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던 이 가정 내에 숨어 있던 가족 간의 기묘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엿보게 되며, 모든 사실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늙어가는 우리 가족들
그런데 죽음을 바라고 있던 것은 다츠와 료사쿠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돌봄을 받으면서도 안락사를 권장하는 신흥 종교 단체에 가입하고, 편안한 죽음을 꿈꾸었다. 다츠는 자신이 죽고 남편도 데려가는 것이 “너희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료사쿠는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것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자신의 마지막 일”이며 그것이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너무 오래 살았다”는 것을 “잘못”이라 느낀다.
『돌봄살인』의 원제는 ‘노숙가족(老熟家族)’이다. ‘늙고 여문 가족’이라는 의미의 이 제목은 출간 당시에는 일본 사회에서도 생소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앞으로 다가올, 우리가 현재 맞이한 고령화사회를 예견한 듯하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반면, 출생률은 줄며 우리 가족들은 실제로 점차 늙어가고 있다. ‘더 길어진 삶’에서 우리는 지금 마주하는 질병과 돌봄 외에도 가족돌봄청년 문제와 같은 새로운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기도 하다. 늙음과 질병, 돌봄과 죽음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한 가족의 심리를 첨예하게 묘사한 이 소설은 더 나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죽음을 위해 우리가 질병과 돌봄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영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