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노애노애怒哀怒哀의 드라마를 향한 열정과 욕망
17년차 마감노동자이자 칼럼니스트의 글쓰기는 꿈을 향해 정진한 자아실현의 과정이자 뛰어난 발상을 통해 ‘글빨’을 휘날리는 휘황찬란한 과정일까.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저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마감을 위한 글감 찾기, 글쓰기, 퇴고의 과정은 지난하고 힘들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며, 한정된 지면 내에서 독자의 눈길을 끌면서도 여론과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는 직업적 윤리를 견지해야 하고, 각종 즐거운 삶의 기제들과 잠까지 포기하며 쓴 글이 공론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엇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럭저럭 좋은 글을 쓰더라도 일부의 동의와 그 수배에 달하는 반론(타당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을 접해야 한다. 게다가 그것이 비판적인 글쓰기라면. 과연 글쓰기는 희노애락보다는 ‘노애노애’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왜 글을 쓰는가? 저자는 말한다. “글쓰기에 대한 매혹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나의 관점으로 재조립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면서 “그 작업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따라오는 상징 권력에 대한 욕망”이라고. 거기엔 “정치적이고 공적인 열망”과 “불순물 같은 허영심”이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여 있다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으면서 “공론장이 글쓰기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의식을 줄이되 큰 책임감을 가지”고 나의 글을 쓰는 것이라고. “왜 독자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질문 따위는 버리고 “최선을 다해 좋은 글을 타협 없이 쓸지”를 고민하자고. 나 자신의 명예욕을 인정욕구로 떨어뜨리지 말고 “공적인 명예와 사적인 애정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라고. 사실은 “우당탕탕 여기까지 온” 삶이지만, “산만한 일상 속에서 각각의 삶의 궤적을 자원 삼아 어떻게든 모순을 줄여보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 쓰고 또 써나가는 것이 결국 글쓰기이고 삶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우당탕탕 지난 17년을 직업적으로 글쓰기를 해오며 살아왔다.
키워드: 재능 ☞ 트레이닝 ☞ 실전 ☞ 논쟁 ☞ SNS ☞ 멘탈 관리
저자는 여섯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글, 글쓰기, 글 쓰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거기에는 글쓰기의 기술도 있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도 있으며, 독자와의 소통, 세계와의 관계 맺음에 대한 진솔한 고민도 있다. 1장(재능)에서는 직업적 글쓰기 전선에 뛰어들게 된 과정을 담았다. 사실은 고만고만한 재능으로, 별다른 특별한 계기 없이 갖게 된 직업이지만, 그 지지부진함이야 말로 어쩌면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이 겪는 멋진 성장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2장(트레이닝)에서는 글쓰기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을 안내한다. 필사, 구조 모방, 위트, 인용, 길티플레저, 루틴 등의 세부적인 내용을 글쓰기와 연결하여 살필 수 있다. 3장(실전)에서는 칼럼을 기준으로 문단을 구성하고 마감까지 진행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사항들을 살펴보았다. 잠은 부족하고 시원찮은 글이 언제나 나올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최대한 좋은 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4장(논쟁)에서는 타인이 본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는 ‘나의 글’을 어떻게 공론장 속에서 이해할 것인지, 논쟁하는 글쓰기가 왜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대화와 발전을 향하는 글쓰기인지 설명했다. 진정한 겸손함은 “상대의 논리를 굴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저자 특유의 관점을 밝혔다. 5장(SNS)에서는 저자 10만 인스타그램 팔로워 계정의 허와 실, ‘좋아요’의 단맛에 취하지 않고 최대한의 공적인 독자와의 거리를 지키기 위한 저자의 노력 등을 담았다. 특히나 자기 PR과 브랜딩이 주목경제라는 이름으로 작가-지식인-셀럽 세계를 흡수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누군가에게는 꼬장꼬장한 꼰대로 보일지 몰라도) 글의 성격과 직업적 위상을 지켜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을 밝혔다. 6장(멘탈 관리)에서는 기이한 “명예욕”을 지닌 작가라는 직업군의 한 사람으로서, 논쟁적인 글쓰기 속 수많은 분쟁들에서 어떻게 작가적 정체성과 정신의 건강을 지켜왔는지 밝혔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글쓰기 동력을 직시하고 솔직해지는 것이며,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연”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바꿔서 말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 이는 또한 작가에 대한 사랑을 독자에게 강요(또는 갈구)하지 말고, 자신의 더 큰 삶 속에서 소중하게 가꾸라는 말이기도 하다.
공감 그리고 도움: 망한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을 때 그래도 완성은 해볼 수 있게
이 책의 존재 가치는 다른 모든 글들처럼 미리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작은 공감과 도움”이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를 그럼에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에게, “한 번 마음먹었다 포기할 거 두 번은 마음먹을 수 있게, 쓰다가 망한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을 때 그래도 완성은 해볼 수 있게”. 17년이나 끊임없이 일감을 구해 글을 썼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명성을 얻고 여러 논쟁 속에서 꽤 자주 회자된 저자가 “보통 사람의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해보일 수도 있지만, “어제와 똑같아 보이는 오늘을 사는 재능과 노력”으로 “시시하지만 만만치 않은 긴 일상과 짧은 성취의 순간이 반복”되어 모여 그의 지금이 생겨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생이란 대개 그런 모양새”고, “글 쓰는 삶도 별다를” 게 없다. 이 책이 글쓰기 그리고 삶에 대한 작은 공감과 도움을 말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