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사이보그, 호모 파베르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을 뜻한다. 다른 종들과 구분되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특성이 도구, 나아가 기술과 관련된 능력임을 강조하는 용어다. 이 말처럼 우리는 도구와 불을 사용한 이래 결코 주어진 정신이나 신체만으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인간을 “자연적으로 타고난 사이보그”라고 말한다.
인간은 도구나 자원을 활용하는 기술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인간-기술(도구)의 공생은 일상의 구성 조건을 넘어 인간다움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조건인 것이다. 기술의 발전 또한 단순한 도구의 진화가 아니라, ‘나’라는 제반 요소의 변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책은 5차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단순한 도구 이상으로 사회에 스며든 여러 융합기술을 소개한다. 산업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융합기술, 기후 환경 위기에 대응할 융합기술, 안전한 사회에 필요한 융합기술, 그리고 인간의 건강과 능력을 증진시킬 융합기술 등, 생소하지만 매우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미래로 가는 길을 여는 융합
융합은 오래 전부터 창의적 도전을 위한 수단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물리학, 화학, 생물학, 그 외에도 여러 학문이 초학제 융합으로 시작했으며, 현재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은 재료공학 또한 지난 20세기에는 대표적인 융합연구 분야였다. 2000년 초 뇌과학 연구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KIST에서 생물학, 재료, 센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했던 당시 뇌과학은 낯설고 새로운 융합연구였다. 하지만 이제는 확고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독자적 분야가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바이오파운드리가 좋은 예시가 된다. 바이오파운드리는 AI와 로봇 기술을 생물학에 접목한 것이다. D.N.A(Data, Network, AI) 등 첨단 IT 기술을 융합한 분야로서, 기존 산업 안에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디지털 뉴딜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이처럼 기술 혁신을 이끄는 융합연구는 탈중심과 탈경계 사회로 나아가는 오늘날에 더욱 중요한 성장점이 된다. 양자 컴퓨팅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이 지녔던 데이터 처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 것이고, 5차 산업혁명의 근간은 초인지화와 초생명화 능력을 발휘할 합성생물학 기술이 기초를 이룰 것이다. 융합기술의 영역은 다양한 인문사회 분야까지 포괄하며 점점 넓어지는 중이다.
혁신은 사회와 소통하며 일어난다. 저성장, 저출산, 기후변화 같은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려면 정치 경제와 사회 전반, 무엇보다 과학기술에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길을 융합연구에서 찾는다. 저자들은 이를 위해 기술적 내용뿐 아니라 융합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도 균형 있게 다루고자 노력했다. 융합기술의 새로운 동향과 사회변화를 담은 이 책은, 우리에게 미래를 바라볼 통찰과 혜안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이끌어갈 융합인재들의 필독서!
이 책은 3부 8개의 장과 16편의 글로 구성되었다.
제1부는 융합이 이끄는 기술 혁신을 주제로 한다.1장을 통해 데이터사이언스와 AI, XR과 메타버스의 발전으로 나타난 산업·경제 패러다임을 살펴보며, 2장에서는 탈탄소 에너지 기술 및 바이오파운드리로 기후·환경 문제의 해결법을 찾는다. 이어서 3장과 4장에서는 각각 사이버 보안과 건강 분야에서 융합기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본다.
제2부에서는 융합이 선도하는 사회 혁신을 주제로, 먼저 5장을 통해 탈중심 사회를 이끄는 웹3.0을 조명한 뒤 초연결 사회, 디지털 혁신과 사회경제 변화를 알아볼 것이다. 6장에서는 인간과 기계, 또 다른 현실이 된 메타버스를 탐구하며, AI와 함께 포스트휴먼 예술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본다. 7장은 증간 인간과 디지털 인간, 그리고 뉴휴머니즘을 개관한다.
제3부에서는 융합이 추동하는 5차 산업혁명을 알기 쉽게 해설한다. 2022년 12월에 열렸던 미래융합포럼 전문가 좌담회를 수록한 8장은 융합학문과 융합기술을 통해 5차 산업혁명이 어떻게 나아갈지 친절한 설명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각 장을 넘기며 현재 어떤 시대를 살아가는지, 어떤 변화를 통해 자신의 상상을 실현해 갈 것인지, 미래 인재로서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를 고민하고 모색할 토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