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언시의 창작, 잡목을 뽑아 평탄한 길을 개척하다
포조 시의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의의는 칠언시에 있다. 포조는 칠언시가 아직 ‘시가’로서 제대로 인정받기 전에,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압운과 구식 면에서도 진일보 발전시켰다. 특히 「‘갈 길은 험난하고’를 본떠[擬行路難]」 18수를 위시한 가행체(歌行體)는 내용 면에서도 충실하여, 성당의 이백, 두보, 잠삼(岑參, 715?~770)과 중당의 백거이(白居易, 772~846) 등의 선구가 되었다. 그래서 청대 초기의 왕부지는, 포조 칠언시의 초창(草創)의 의의를 “갈참나무와 백유나무 같은 관목을 처음으로 뽑아서 막 평탄한 큰길을 개척한[柞棫初拔, 卽開夷庚]” 것으로 비유하고 “칠언시는 포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면, 모두 돌피와 피 같은 잡초일 뿐”이라고 하였다.
산문의 경물 묘사의 정밀함, 이사훈(李思訓)의 산수화를 앞선다
포조는 시인이면서 산문가여서 적잖은 산문 작품을 남겼는데, 모두 당시 성행한 변체(騈體)로 되어 있다. 그중에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도 더러 있다. 예를 들면, 「황폐한 성 부[蕪城賦]」는 광릉성(廣陵城)의 황폐한 경물 묘사에 “호매하고 황량한 기운이 넘쳐 마음을 놀래고 혼백을 감동케 하여” “부가(賦家)의 최고 경지에 올랐다”(姚鼐 『古文辭類纂』)라는 평가를 받았고, 「대뢰안에 올라서 누이에게 부친 편지[登大雷岸與妹書]」는 비유 과장 대우의 기교를 동원하여 여산(廬山)의 산수를 형상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검푸른 산자락과 산허리를 감싼 푸른 구름, 붉은 저녁놀을 받아 황금빛으로 보이는 봉우리, 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놀이 색동의 층을 이룬 가운데, 골짜기에서 봉우리로 종으로 이어지는 희뿌연 안개가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룬다. 이어지는 골짜기 물에 대한 묘사에서는, 과장을 통해 냇물의 갖가지 자태를 동적으로 형상화하여, 정적인 산의 묘사와 묘한 대조를 이루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 청대의 허련은 이에 대해 “이사훈(李思訓)이 몇 달을 그려도 그림으로 그려내기가 아마 어려울 것”이라고 극찬하였다.
『포참군집주』는 시와 부의 번역은 가능한 한 음수율과 운각(韻脚)을 고려하여 정형의 글이라는 원작의 특성을 살리고 낭송에도 편하도록 주의하였다. 저본의 주석은 전거(典據)는 서명만 제시하고 인용문에도 오류가 적지 않은데, 번역에서는 전거의 편명까지도 상세히 밝히고 내용상의 오류를 수정 보완하여, 전고의 원의(原義)뿐만 아니라 포조 시문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도록 하였다. 포조 시문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연구자에게도 적잖은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