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박순경 번역의 「기독교의 본질」 초판이 출간된 건 1991년이다. 보수적인 신학(칼 바르트)을 공부했던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한 이유를 유추하자면 30여 년 전 우리 사회와 한국 개신교가 종교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그녀의 비판의식에 있었을 것이다.
역자의 사후 3주기를 맞아 이 책을 다시 펴내게 됨은 아직 여전히 한국 기독교는 신을 자기 입맛에 맞게 규정하고, 인간성을 배반하는 길, “신학은 인간학”이라는 휴머니즘에 근간한 기독교 이념의 실현이나 인간해방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교회는 저세상의 논법에 의거해 현재를 제단하고 있고, 그리하여 현재를 세속적 논법으로 규정하여 정치적이며, 자기 이해에 충실한 탐욕의 종교로서 처신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시대 종교는 의식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소외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실현을 지향해야 하고,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의 본질은 인간학이어야 한다.
◈ 저자 서문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신과 세상의 감정을 다치게 하였다. 나는 서문에서 이미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는 “독신적(瀆神的) 대담함”이 있었던 것이다. 즉, “기독교도 역시 기독교의 고전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다만 참된 것, 위대한 것, 고전적인 것만이 사유될 가치가 있으며, 참되지 않은 것, 왜소한 것, 비고전적인 것은 풍자극 혹은 익살극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를 사유할 가치가 있는 객체(客體)로서 확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근세의 무절제하고, 무성격적이고 안이한 그리고 통속적이며 속된 에피쿠로스적 기독교를 제거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직 순결한 처녀였던 시대로 되돌아가야 하였던 것이다….”
◈ 옮긴이의 글
철저하게 신을 인간으로 환원함으로써 신을 인간화시킨 사람이 포이에르바하이다. … 한편 포이에르바하에게서 인간화된 신 문제는 결국 자유주의신학과 관념론적 사상의 추세에서부터 필연성으로 대두된 것이라고 본다. 포이에르바하의 사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안다.
◈ 엮은이의 글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에서 제기되어 들려오는 그의 기독교 비판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젊은 마르크스가 그를 현대의 ‘연옥 불’이라 언급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포이에르(불)-바하(개울)를 통하지 않고는 진리와 자유”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진리와 자유로 가는 길을 추구하는 모든 이가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을 탐독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