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강아지, 고라니의 빛나는 외출!
어둠 속 생명체들의 목소리로 듣는 빛과 어둠의 이중주
책을 펼치면 해 질 무렵, 캄캄한 숲으로 신나게 뛰어가는 강아지의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깊어진 어둠에 깜짝 놀랄 때쯤, 반딧불이는 불빛으로 강아지 보리에 말을 건다.
모든 것이 갑자기 어둠에 잠기면
내가 나타날 거야.
어떤 것은 캄캄할 때 더 잘 보이거든.
빛나는 신호를 보낼게. 나를 찾을 수 있게.
길을 잃은 보리는 반딧불이를 따라 캄캄한 숲 깊숙이 들어서게 된다. 반딧불이의 불빛은 이렇게 독자를 어둠 속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목소리를 지닌 것은 반딧불이만이 아니다. 책 속 화자는 반딧불이지만 반딧불이는 다른 생명체들의 목소리를 듣고, 빛으로 화답하는 소통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고라니와 강아지가 “같이 놀자” “어디서 왔어?” 하고 말하는 장면은 얼핏 서로를 향해 물어보는 상황처럼 보이지만, 실은 반딧불이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것을 독자는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알아챌 수 있다. 반딧불이는 알, 애벌레, 번데기 시절을 거치며 끝없이 기다려야 했던 지난 시절을 마름모 형태의 빛으로 친구들에게, 또 독자에게 보여준다.
나는 이름도 없는 작은 알,
작은 애벌레였어.
단단한 번데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었지.
반딧불이의 화려한 춤이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된 강아지는 자신처럼 홀로 남은 반딧불이에게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하고 묻는다. 그때 멀리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보리야.” 어둠에 싸여 진짜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강아지의 이름을 이때에야 독자들은 알아챈다. 보리는 목소리를 따라, 스스로 켜 낸 마음속 빛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색이 사라진 곳, 어둠 속에서는 알 수 없었던 강아지의 진짜 모습이 때마침 켜진 가로등 아래서 마침내 드러난다. 갈색의 작은 강아지였던 보리는 그렇게 가족을 다시 만나 품에 안긴다.
작가는 빛을 따라가는 보리와 반딧불이, 숲속 동물들을 통해 ‘우리의 심리적 자원’ 즉, ‘희망’을 이야기한다. 텅 빈 어둠을 채우는 것은 거대한 횃불이 아니다. 반딧불이의 불빛처럼 작은 단 하나의 빛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외부의 빛이 아니라 내면에서 스스로 켜 낸 마음의 빛이라면, 결코 쉽게 꺼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찬란해지는 빛
빛의 깜박임까지 형상화해 낸 보석 같은 그림
반딧불이를 다룬 그림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에 담긴 반딧불이는 특별하다. 이 책에는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등 세 종류의 반딧불이들이 등장한다. 이장미 작가는 이 책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3종의 반딧불이의 알과 애벌레, 성충의 모습까지, 종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시각적인 자료를 모두 수집해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단순한 반딧불이 모사가 아닌 작가의 시각이 담긴 예술적 형상화에 이른 것이다. 반딧불이는 종에 따라 빛의 색깔과 깜박임의 패턴이 달라지는데, 이러한 변화를 그림책의 정지된 장면 안에 담아내기 위해 작가는 빛의 형태화에 도전하기도 했다. 깜박임이 없고 길게 지속되는 늦반딧불이의 불빛은 노란색의 점과 선으로, 은은한 빛을 일정한 규칙 없이 깜박이는 애반딧불이의 빛은 연두색 점과 마름모의 형상으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동시에 분당 60~120회까지 깜박이는 운문산반딧불이의 빛은 연두색과 노란색이 교차하는 점과 보석 같은 마름모의 형상으로 각각 다르게 구현한 것이다.
세 종류의 반딧불이 불빛은 장면마다 다르게 연출되어 어둠에 잠긴 숲을 다채롭게 빛낸다. 강아지 보리가 캄캄한 숲을 헤매는 초반부에서는 운문산반딧불이가 길잡이처럼 독자를 이끈다. 숲의 한가운데에 이르면 늦반딧불이와 운문산반딧불이가 함께 춤을 추며 화면 가득 반딧불이의 빛이 별빛처럼 아름답게 수 놓이고, 그 아래에서 보리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새로 사귄 고라니 친구와 반딧불이를 구경한다. 하지만 반딧불이의 춤이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보리는 다시 홀로 남겨진다. 그때, 보리의 곁에는 애반딧불이가 함께 있다. 둘은 용기를 내어 함께 새로운 빛을 찾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