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을 맡은 자가 일에 앞서 먼저 공격하면, 법률을 관장하는 자가 또 뒤따라서 없는 죄를 꾸며 법망에 걸려들게 하고서, 하찮은 말 한마디와 사소한 일 하나를 들추어내 극악한 범죄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면 정치하는 자는 정치인들에게 호소하여, 한 사람이 말하면 백 사람이 동조하면서, ‘…… 그를 처벌하지 않으면 바른 정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듯한 이 논설은 후기 하곡학파에 속하는 이건방의 「원론(原論)」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이건창의 「원론(原論)」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들의 글은 비록 구체적인 서술상에 차이가 있지만,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과 비판의식을 공유한다. 사실 이런 인식은 과거로는 초원 이충익(李忠翊, 1744~1816)에서 하곡 정제두(鄭齊斗, 1649~1736)로까지 소급되고, 이후로는 담원 정인보(鄭寅普, 1892~1950)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충익의 「가설(假說)」과 「군자지과설(君子之過說)」은 이건방과 이건창이 지은 「원론(原論)」의 서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건창과 이건방의 「원론(原論)」 뿐만 아니라, 그 연원이 되는 이충익의 「가설(假說)」과 「군자지과설(君子之過說)」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매우 복잡한 심경이 들 것이다. 이것이 과연 100여 년 전의 글인가? 이것이 과연 400년 전부터 누적된 정치적 폐해를 지적한 글이 맞는가? 어째서 지금과 다르지 않은가? 이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단순한 이치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런 비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이들 간의 카르텔에 대한 비판의식이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또 다른 성찰이 필요하다. 실심을 기반으로 허위의식을 비판하는 논리는 하곡학파의 중심사상이었고, 이충익, 이건창, 이건방의 정치평론 또한 같은 맥락에서 기술된 것이다. 이들의 논의는 당대 공론정치의 이중성을 간파하고, 학술·정치에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위선을 제거하는 비판론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조선 후기뿐만 아니라, 언론-여론정치의 왜곡과 검찰 권력의 사유화 문제가 만연한 현대 한국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