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이, 세면대에서 물장난 그만하고 나오세요!”
“선생님, 보세요. 손을 씻고 있는 건지. 장난하고 있는 건지.”
다섯 살 난 아이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십 년이 넘어도 그 장면이 선명하다. 2000년도 당시 나는 이십 대 초반이었다. 낮에는 어린이집 보조 교사로 일했고 저녁에는 학원에 다녔다. 아이들과 지내며 알았다. 아이 키우는 게 보통 일은 아니구나. 난 못하겠다.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2002년 여름. 서울 시청 앞 광장, 대학로에서 월드컵을 마음껏 즐겼다. 그해 가을 취업에 성공했다. 어린이집 교사가 아닌 니트 디자이너로. 어른과 일을 하니 말이 통하고 몸이 힘들지도 않다. 점심 식사도 의자에 앉아 편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하고 하이힐도 신는다. 짧은 치마를 입어도 되고 머리를 질끈 묶지 않고 치렁치렁 늘어뜨려도 된다. 흰색을 좋아해서 흰 티셔츠에 흰 바지 원 없이 입었다.
친구와 함께하는 게 좋았다. 대학 졸업 전까지 혼자서 무엇을 한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이 년 동안 아이들에게 단련된 덕분인지 혼자가 편해졌다. 식당에서 밥 먹는 건 물론, 쇼핑하기, 여행하기, 다른 사람 신경 쓸 거 없이 나만 챙기면 된다. 홀 가분하고 자유로웠다. 개인주의가 이토록 편하다니.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리라.
삶은 흐른다. 결혼도 했다. 삼십 대는 달랐다. 마음먹었다고 다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전전긍긍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있었던 게 다행이다. 쉽게 낳고 키웠으면 당연하게 여겼을 터다.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무슨 일이든 성공할 줄 알았다. 어떤 일은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포기도 필요하다. 임신과 출산, 육아가 그랬다.
모든 사람이 대단하게 보인다. 우리는 무수한 확률을 뚫고 이 세상에 왔다. 귀하게 나에게 온 아이. 키우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나로 인해 잘못되는 건 아닌지.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 어렵게 낳았는데 육아 또한 만만치 않다.
엄마가 되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색깔별로 사둔 전지현 틴트, 바르지 않아 버렸고 기분에 따라 바꿔 쓰던 향수는 몇 년간 방치되어 방향제가 되었다. 짧은 반바지, 딱 붙는 옷들은 헌 옷으로 팔거나 버렸다. 귀걸이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되어 구멍이 좁아졌다. 오랜만에 귀걸이를 좀 해볼까, 했다가 도로 서랍에 넣었다. 종일 아이부터 챙긴다. 먹이고 이 닦이고 입히고. 아이는 멀쩡히 입히려 애썼다. 정작 나는 거울도 보지 않고 외출하면서 말이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뒤집어 입었다는 사실을.
직업 체험하듯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여러 일을 경험했다. 고난도 직장은 어린이집이었다. 청바지에 밥풀을 달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잊고 살았다. 아이 하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낳기만 하면 되는 줄 착각했다. 현실 육아는 생각보다 쓰디썼다. 아이는 스스로 잠자는 법을 몰랐다. 숙면이 이토록 소중한지 아이를 키우며 깨달았다. 먹이는 일도 쉽지 않다. 입이 짧은 탓인지 몇 번 젖을 빨다 잠이 들었다. 깨우려 노력했지만 허사다. 젖을 빨며 자는 게 달콤한가 보다. 이대로면 아기를 계속 키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종일 안아서 먹여야 하니 쉴 틈이 없다. 귀를 만지고 발바닥을 간질여도 꿈나라로 간 아기를 깨울 수는 없었다. 옷 입는 건 어찌나 싫어하던지 나중에는 양말 대충 신기고 내복 차림으로 아기 띠를 하고 외출했다. 딸 로망, 예쁘게 옷 입힌 아기는 인스타그램에만 있었다. 남편이 출장을 가면 육아를 전담하게 된다. 어느덧 아이에게 점점 익숙해졌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안’이라고 말하면 안아주고 ‘쇼’라고 말하면 손을 잡아주었다. 항상 촉을 세우고 아이만 바라봤다. 육아서를 보며 할 수 있는 것을 골라냈다.
아이가 자라니 내 시간도 생겼다. 육아와 병행하며 할 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배우러 다녔다. 무언가를 밖에서 채우기에 급급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졌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다행이기도 하다.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외부 상황에 휘둘렸다. 멍들고 있는 줄 몰랐다. 반면 잘한 일들도 있었다. 글을 쓰며 알았다. 남 탓하고 부정적이던 나를 돌아보게 된 계기가 코로나 덕분이다.
아이가 생기지 않던 시간이 약이 되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칭찬하고 반성하며 성장해 나간다. 아이만 자라는 게 아니라 엄마인 나도 자라고 있다. 몇 년 후 중학생이 될 윤이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1장과 2장에서는 어려웠던 임신과 출산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덮어두었던 어린 시절을 끄집어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지난날이 새롭게 다가왔다. 3장에서는 초보 엄마가 육아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아이만 낳으면 되는 줄 알았다. 눈물로 밤을 보내고 책을 들었다. 육아서에 의지하며 견뎠다. 4장과 5장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기 위한 나름의 방법들을 적었다. 모든 게 쉬웠다면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좌절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깨달아 갔다. 천천히 와 준 아이 덕분에 감사와 소중함을 알았다. 노산이니까 열심히 운동했다. 아이만 큰 게 아니라 나도 자라났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 나와 비교한다. 어제랑 별로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면 실망하긴 이르다. 몇 년 전 나와 비교해 보면 안다. 주름과 잡티가 생긴 만큼 나도 성장했으리라.
노산, 난임 아이만 낳으면 끝이 아니다. 육아는 또 다른 산이었다. 쉽게 지쳤다. 요리를 잘 못했다. 육아 상식이 전혀 없었다. 모성애는 저절로 나오는 줄 알았다. 내향성 엄마다. 아이 키우기에 좋은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만의 육아를 찾으려 노력했다. SNS에 수시로 올라오는 정리된 집, 예쁘게 옷 입은 모델 같은 엄마와 아기. 여행은커녕 내복 차림으로 집 앞 카페 가는 게 고작이었다. 남들을 부러워하며 따라 했다면 어땠을까?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다.
버킷 리스트에 있던 책 출간. 죽기 전에 언젠가 책을 내고 싶었다. 육아에 관한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 차단되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글 쓰게 되었으니.
육아가 처음이라 막막했다. 나처럼 어딘가에서 어렵게 아이를 키우며 애쓰는 초보 엄마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