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문화는 세계사적 현상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앞다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있고, 한국의 현대 문화는 앞다퉈 세계인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지난 세기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 같은 반전을 이루어 낸 한국 문화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국여지승람』은 그런 문제의식 아래 왕도, 종교, 전쟁 등 한국 문화를 구성해 온 핵심 주제를 선정하고 각 주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따라가며 주요 지역과 장소를 탐사하고 정리한 시리즈이다.
제1권의 주제는 ‘왕도’이다. 왕도는 왕국의 수도라는 뜻이다. 고조선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국가는 대부분 왕국이었다. 수도는 현대 국민 국가에서도 대체로 그 나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축도이다. 하물며 절대 권력자가 웅거하면서 통치의 중심으로 삼던 왕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사의 역대 왕도를 탐사하는 것은 곧 한국사와 한국 문화의 정수를 탐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지금의 평양으로 추정되는 고조선의 왕검성부터 지금의 서울인 대한제국의 한성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이끌어 온 왕도들을 샅샅이 탐사하고자 한다. 지도에서 한국사의 역대 왕도를 살피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평양, 개성, 서울, 부여 등 주요 왕도는 대부분 서해안에 인접한 1번 국도에 늘어서 있다. 신라의 천년 왕도인 경주만이 외롭게 동해안의 7번 국도에 올라앉아 있을 뿐이다. 이번 탐사는 그러한 지리적 양상의 역사적 문맥을 추적하고 그것이 빚어낸 한국 문화의 시공간적 특징을 찾아내는 여행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굵직한 주요 왕도의 자취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사에는 가야처럼 연맹체를 이룬 작은 왕국이나 삼한처럼 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한 소국이 별처럼 많았고, 그들의 왕도나 ‘국읍’이 전국 곳곳에 별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그 모든 곳에 관한 정보가 담길 이 책이 한국 역사 문화의 큰 줄기를 종주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 안내서가 되기 바란다.
한국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다 보면 일보일사(一步一史)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느 고장이든 역사의 자취와 마주치지 않고는 단 한 걸음도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쁘고 분하고 슬프고 즐거운 온갖 사연이 수천 년 동안 삼천리 방방곡곡에 깃들어 왔다. 현대 한국의 문화는 그처럼 다양한 분포와 층위를 갖는 역사와 전통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 왔고 성장해 갈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성장에 작은 디딤돌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