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한 상황에 내몰린 한 여성의 삶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흥미로운 작품!
작가 톄닝이 이 소설을 발표한 해는 1989년이다. 1980년대라면 요즘 청년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그야말로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일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소설 첫 장, 베이징 호텔에서 주인공 쑤메이와 쑤웨이 자매가 나누는 대화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으로 보아도 거의 낯설지 않다. 그렇게 시작된 소설은 점차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쑤메이가 회상하는 할머니 쓰이원의 젊은 시절로 올라간다.
쓰이원의 일생은 중국의 몇몇 중요한 역사 단계와 관련이 있다. 혁명을 열망하던 여고생 쓰이원은 당시 학생운동의 기수인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으나 끝내 원만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후 다른 남자와 결혼한 쓰이원은 좋은 아내, 며느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모두 절망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은 쓰이원이 온몸으로 시대를 맞이하며 자기 나름대로 사회와 가정의 불편부당함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읽는 사이 독자는 문혁이나 홍위병, 혁명대중, 박해받는 지식인들이 주인공인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여성 개인의 심리상태에 집중하게 된다. 좋은 집안에 학식까지 갖춘 여성 쓰이원은 열애가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아버지가 정해준 남성과 결혼한 후 가부장적 제도에 순응해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되기로 한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란하고 야비한 남편, 악독한 시아버지의 모습에 현모양처의 꿈마저 물거품이 된다. 그로부터 쓰이원의 내면에 자리한 꽃 같은 여성성은 괴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시대의 아픔과 일상의 충격에 왜곡되는 쓰이원의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결코 공감은 할 수 없는 내용이 거듭 이어진다.
소설 《장미의 문》에는 쓰이원 이외에도 또 다른 눈여겨볼 만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바로 그의 며느리 쑹주시와 시누이 꾸빠다. 쑹주시는 과감하고 솔직하다. 이런 성향의 쑹주시는 전혀 성격이 다른 시어머니 쓰이원과 한 공간에 살면서 자신의 자존을 지키고 여성성을 드러내는 방법이 쓰이원과는 사뭇 다르다. 그녀의 여성성은 쑤메이에게도 영향을 주는 한편, 쑤메이와 묘한 대결 구도를 이룬다.
시누이 꾸빠는 첫날 밤, 남편에게 기만을 당하고 파혼 후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자신의 호칭을 꾸빠로 바꾸며 성적 정체성을 거부하고 또 다른 해괴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서서히 몰락한다. 남성에게 배신을 당한 후 선택한 삶의 방식이 쓰이원과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가장 건강한 삶을 보여주는 이는 누구일까? 바로 화자로 등장하는 쓰이원의 외손녀 쑤메이다. 그녀는 성장 과정에서 외할머니 쓰이원의 노림수에 휘말리며 주위 어른들의 모습에서 성(性)적으로 여러 차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결국 이런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동생을 데리고 가출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한다.
만일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난해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남성들의 시각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소설은 종종 중국인들에게도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자는 이 책을 읽고 4분의 3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왕쩡치(1920~1997, 중국 현대문학가)의 말로 이 소설에 대한 평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난해한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몇몇 문장의 형식적 문제를 제외하면 ‘난해’, 즉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는 혹시 남성들의 시각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 소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좇아가는 일이 조금 버거울 뿐인 듯하다. 기존 소설과는 전혀 다른 플롯과 전개, 시점의 혼란, 괴이하게 뒤틀린 인물들의 행태 등등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에 몰입하다보면 1, 2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그야말로 숨을 죽이고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게 된다. 그러니 그저 난해하다는 말로는 이 책에 대한 평가를 대신할 수 없다.
영미소설에 비해 중국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하다. 직ㆍ간접적으로 접해보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이거나 어릴 적부터 상대적으로 영미문학에 노출되어 있던 우리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작가 톄닝이 내놓은 첫 번째 장편소설을 통해 중국소설의 색다른 세계에 빠져보면 어떨까? 흔히 중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때로는 멀지만 가까운 옆 나라를 좀 더 들여다보고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중국 사회를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도 작가의 생각을 따라 특수한 상황에 내몰린 한 여성의 삶을 지켜보며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장미의 문》은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 옮긴이의 말
흔히 중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또 중국소설은 한국 독자들에게 조금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 멀고도 가까운 존재가 되도록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여성 작가 톄닝이 내놓은 첫 번째 장편소설은 중국소설의 색다른 세계를 발견하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의 핵심 등장인물은 외할머니 쓰이원, 어머니 좡천, 손녀 쑤메이로 이어지는 삼대에 걸쳐 세 명이다. 그러나 《장미의 문》은 문화대혁명이 시대배경인 여느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 사회를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도 특수한 상황에 내몰린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_유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