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서사에 빗대어
아버지를 상실한 과정을 이야기하다
〈뉴욕타임스〉는 이전 시집들에 비해서 《아킬레우스의 승리》가 “훨씬 더 선명하고, 순수하고, 예리하다”고 평가했다. 그 시선은 상상할 수 없는 상실을 통과한 시인이 벼려 낸 언어의 어떤 특징이기도 하다. 글릭의 인생에 또 다른 큰 상실이 아버지의 죽음인데, 1985년 돌아가신 아버지가 병으로 서서히 사그라지는 모습, 그걸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들이 《아킬레우스의 승리》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아킬레우스의 승리’라는 표제시의 두 주인공은 모두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왔다. 이 시는 아킬레우스의 승리를 제목으로 가지고 왔지만, 실은 아킬레우스의 지극한 슬픔을 이야기한다. 그의 승리는 가장 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후에 오기에, 승리의 찬란한 기쁨도 그 손실에 비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온 존재로” 슬퍼한다.
시집의 많은 부분은 아픈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신화적인 주인공을 빌어 서로 다른 성품, 서로 다른 운명들이 가족 관계 안에서 복잡하게 얽히는 풍경은 이전 시집들에도, 또 이후에 나온 시집들에서도 일관된다. 신화와 성경 등 옛 이야기들의 파편들을 엮어서 시인은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고, 아버지가 만든 가족을 되살린다.
21세기 노벨문학상 첫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2020년 루이즈 글릭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시문단에서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2000년 이후 여성 시인으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909년에 〈닐스의 모험〉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 여성 작가 셀마 라겔뢰프 이후 16번째이고, 1996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후 두 번째 여성 시인이다. 한림원 위원인 작가 안데르스 올손은 “《야생 붓꽃》(1993)에서 《신실하고 고결한 밤》(2014)에 이르기까지 글릭의 시집 열두 권은 명료함을 위한 노력이라고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덧붙여 글릭의 작품 세계를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하며 “단순한 신앙 교리(tenets of faith)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엄정함과 저항”이라고도 표현했다.
루이즈 글릭은 50년 동안 미국 시 문단 중심에 선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그래요, 기쁨에 모험을 걸어보자고요 / 새로운 세상의 맵찬 바람 속에서”라는 구절이 있는 시 〈눈풀꽃〉만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퓰리처상 · 전미도서상 · 미국 계관 시인 · 국가인문학메달 · 전미비평가상 · 볼링겐상 ·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서상 · 월리스스티븐스상. 그리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그녀의 작품은 우아함, 냉철함, 인간에게 공통적인 감정에 대한 민감성, 서정성, 그리고 그녀의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난 거의 환상에 가까운 통찰력으로 지속적으로 찬사를 받는다. 2023년 10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