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출판 전에 천명한 진화의 기본 원리
마음도 자연선택의 결과라는 다윈의 견해 반박
이 책에 실린 논문 열 편은 출판 연도 순이 아닌 주제에 따라 배열됐다. 월리스는 한 종에서 다른 종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것을 진화의 기본 원리로 설명한다. 월리스는 지리학과 지질학에서 발견된 아홉 가지 사실로부터 “종 하나하나는 같은 시공간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가까운 동류종과 함께 출현했다”는 사실을 추론했다. 모든 생물을 신이 창조했다고 믿던 시절에, 기존에 존재하던 생물에서 새로운 생물이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일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1장) 유용한 변이를 지닌 개체는 살아남고 유용하지 않거나 해로운 변이를 지닌 개체들은 사라질 것이며, 우월한 변종이 원래 있던 종을 궁극적으로 완전히 밀어내고 이 변종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그리고 월리스는 후일 자서전에서 이러한 결과를 최적자생존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2장) 책머리에 놓인 이 두 편의 논문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되기 전에 발표되었다.
9장에서 월리스는 인간의 의식은 자연선택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편다. 월리스는 인간과 동물에 자연선택이 영향을 주었으나, 인간이 지닌 다른 인간에 대한 동정심과 같은 마음은 자연선택으로 형성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음은 최적자생존, 즉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 없고 내재력 또는 더 높은 존재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마음도 자연선택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다윈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또 월리스는 인간의 손과 발, 털이 없는 피부 등은 자연선택 이론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다음과 같은 그의 설명에서 자연선택 이론으로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일이 적절치 않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지능적 힘이 인간의 발달을 인도했거나 결정했다는 것이 입증되고 나면, 이 힘의 조짐을 볼 수 있는데, 이 힘은 실제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10장)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던 다윈은 월리스의 이 논문을 읽고서 인류의 기원과 성선택에 관한 『인류의 친연관계와 성선택』을 집필, 1871년에 발간했다.
진화론의 숨은 창시자 월리스 탄생 100주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진화론 연구 재도약 기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월리스는 찰스 다윈과 같은 시기에 자연선택 이론에 근거한 진화를 주장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인류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다윈의 『종의 기원』은 ‘자연선택 이론’ 확립에 크게 기여한 여러 학자들의 이론 위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지질학 원리』로 유명한 찰스 라이엘, ‘환경에 적응한 사람(적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한 인구론의 토머스 맬서스, 그리고 바로 월리스이다.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난 월리스는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특히 갈라파고스제도의 내용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1856년부터 약 8년 동안 말레이제도와 술라웨시섬, 보르네오섬 등을 탐험하는데 그는 여기서 보르네오와 술라웨시를 동서로 가르는 기준선(월리스 선)으로 각 지역의 생물 특징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두 지역의 진화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월리스는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맬서스의 이론, 즉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생물의 변이가 약간이라도 유리하다면 진화에 우월한 존재가 되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월리스가 말레이제도 등지에서 연구한 결과를 평소 존경하던 다윈에게 보내고, 다윈이 월리스가 발견한 ‘진화’가 자신과 동일한 자연선택 이론에 근거하기에 크게 당황하여 연구 발표를 서둘렀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바다. 이 책은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이론을 정립하였으나 다윈의 그늘에 가려진 이 진화론의 공동 창시자 월리스가 나아간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이 책을 번역한 신현철 박사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번역하고(『종의 기원 톺아보기』) 월리스의 걸작을 이어 번역함으로써 진화론 연구에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설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