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에서 똥의 재현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나-고전문학에서 현대문학까지 시계열적 배치로 연구의 흐름 짐작하게
‘연암에서 SF·퀴어까지, 한국문학의 분변학’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주제론적으로 관통하는 바, 두 분야 사이의 장벽이 심화되어온 분과학문체제 속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편집이다. 30대 소장학자에서 70대 원로까지 11명의 필자들이 다양한 시기와 작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개략적인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연암 박지원의 조선후기에 한양 역시 다른 근대도시들처럼 인구집중에 따라 똥의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넘쳐나는 한양의 똥을 모아 농촌으로 옮기는 똥장수가 나타나지만 사회적비천함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다. 실학파의 거두답게 연암은 「예덕선생전」에서 똥장수를 등장시키고 그들을 양반과 대비시킨다. 똥장수는 똥을 밥으로 순환시켜 세상을 이롭게 하며, 엄행수를 비천시하는 양반들이야말로 똥만도 못한 존재라는 식이다. 신분에 따라 귀하고 천함, 아름다움과 추함의 감각이 차별적으로 배치되는 지배적 인식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식민지시기 이광수, 김동인, 심훈, 김남천 등의 감옥 서사에 주목한 논문도 있다(황호덕, 한만수). 일본은 조선인을 ‘인간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로 야만화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정당화논리를 찾았는데, 감옥이란 똥과 인간이 잘 구분되지 않는 장소이니 이런 야만화에 적절한 장소였다. 감옥서사들은 똥은 비천화의 주요 기제로 활용되는 감옥의 현장을 적실하게 묘사하지만, 동시에 비천화를 숭고로 반전시키고 있다. ‘말하는 입’과 ‘먹는 입’, 그리고 ‘싸는 구멍’의 계서화 및 그 반전이 작품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그리고 이광수와 다른 작가들의 감옥서사가 어떻게 구분되는가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똥냄새와 새 상품의 냄새를 비교한 논문도 흥미롭다. 자연, 빈곤층, 조선인 등은 후각적으로도 타자화되었고 이를 통해서 과학, 부유층, 일본인 등은 주체화되었음을 확인한다(이경훈). 감옥이나 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의 이런 경향과는 달리 심훈의 『상록수』를 비롯한 농촌소설에서 두엄은 된장, 밥, 고향냄새 등과 동일시되면서 구수한 것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시기 똥의 문학적 재현은 ‘불쾌’가 ‘쾌’보다 지배적이었는데 이는 위생관념과 화학비료가 점차 보급되는 상황이었다는 점, 특히 근대화에 대한 작가들의 열망과 관련될 것이다.
해방 이후 일본인/조선인 사이의 감각적 차별은 수그러들지만 민족 내부에서는 소수자들을 똥과 동일시하면서 비천화했던 지배자들의 은유체계는 여전했다. 문학은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너희야말로 똥이다’라는 식의 되받아쓰기를 구사하는 것이 대체적인 추세였다. 특히 민중문학에서는 ‘똥=적’의 동일시에 의존하는 이분법적 인식이 강력했는데, 이는 외부의 적을 통해 민족, 민중 등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여성 등의 또 다른 소외를 불러오기도 했다는 지적도 주목할만하다(김철).
1980, 90년대 이후에는 생태주의, 도시문명 비판, 비인간(非人間)주체 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똥의 재현은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정호승의 시에서 똥은 육체를 정화하고 영혼을 비상시키는 성속(聖俗)의 교차점에 위치한 사물이라고 해석한다. 한편 최승호의 시에서 똥은 인간의 탐욕이 농축된 혐오스러운 것으로, 하얀색 도기 변기는 문명의 세련된 매혹과 공포를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각각 그려진다(오성호). 최승호 시에서 배설물 등 아브젝트(abject)는 근대적 인간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폐기되고 억압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되었다(정기석). 인간/비인간, 생명/죽음의 이분법적 위계에 대한, 상품과 쓰레기를 동시에 양산하는 자본주의 등에 대한 해체적 비판이 이 작품들에서 강력하다는 것이다.
시인 김현의 작품에 주목하여 퀴어가 똥이나 항문섹스와 연계되면서 비천화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한국문학사 서술에서 정상가족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작업도 흥미롭다(김건형). 김동인부터 김초엽까지 100여년의 SF를 점검한 논문도 있었다.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에서 똥을 식량으로 전환하는 모티프는 단순히 기발한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의 문제들을 서구과학에 의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형상화한 것이며, 최근의 SF들은 인류세 시대의 상상적 대안으로서 똥의 재자원화에 대한 상상력이 본격 대두된다는 지적이다(이지용).
인문적 분변학(糞便學; Scatology) 3부작을 한국 최초로 완간-소수자 연구가 감각의 차원으로 확대되길 기대
분변학은 한국에서 매우 부진한 연구분야 중 하나로, 의학이나 환경공학 등 자연과학의 차원에서 조금씩 다루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발간되는 『은유로서의 똥』(한만수 편, 소명출판, 2023)은 『종교와 똥. 뒷간의 미학』(박병기 편, 씨아이알, 2023)과 거의 동시에 출간되는 바, 2년전 출간된 『똥의 인문학』(한만수 오영진 편, 역사비평, 2021)까지 포함하여 ‘똥 3부작’이 완간되는 셈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똥에 대한 인문학적 집중 점검으로는 한국 최초라 할 수 있다.
‘똥 3부작’은 5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융복합 프로젝트 ‘사이언스 월든’(연구책임자 유니스트 조재원교수)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으니, 이 3부작에 수록된 논문들 거의 대부분은 이 프로젝트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것이었다. 사이언스 월든 인문학팀장인 동국대 한만수 교수는 “분변학이란 연구자들에게도 워낙 낯선 주제인데다 학제적 접근이 필수적이므로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연구에 동참할 분들을 모시기도 쉽지 않았고, 발표 전에 수차례 사전 집담회를 거쳐야 했는데 중도에 포기한 연구자들도 여럿이었다”면서 “소수자 연구가 감각적 차원에까지 활성화되기 위해서 분변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