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블루 컵’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저자의 인지 재활 훈련에서 사용된 암기 카드의 하나였다. 암기 카드는 단순한 그림이나 아무런 연관 없는 단어 조각들을 담고 있는데, ‘언더 블루 컵’이라는 카드는 저자가 인지 재활 훈련에서 첫 번째로 마주하게 된 예시 단어였다. 기억 상실은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홀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도 같다. 저자는 무의식 어딘가에 남겨진 삶의 편린, 혹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삶의 내력을 서서히 복구하면서 마침내 ‘언더 블루 컵’이라는 단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언더 블루 컵’은 “기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연습 대상이자 사라진 기억에 전해진 우연한 선물”로, 그녀의 기억 회복에 필수적인 매체였다.
『언더 블루 컵』은 손상된 기억을 회복하려는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언뜻 일화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회고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론과 역사, 개인적 서사가 독특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얽혀 있는 이 책은 의심할 여지없이 매체 이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이전부터 ‘포스트미디엄 조건’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연구해온 바 있으며, 『북해에서의 항해』에서도 흔히 개념미술가로 알려져 있는 마르셀 브로타스가 사실은 매체를 탐구하는 중요한 작가임을 입증한 바 있다.
크라우스는 뇌졸중에서 회복되는 과정이 글쓰기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삶과 예술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발판 혹은 기반이 무엇인지를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이 책은 글쓰기 실험으로 가득 차 있다.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어디에서도 안전한 닻을 찾을 수 없기에 결코 선형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저자는 디킨스를 자주 소환하는바 플롯의 대가였던 디킨스에게서 발견되는 텍스트적 즐거움 혹은 바르트가 말하는 텍스트적 즐거움, 그리고 수전 손태그가 말한 예술의 에로티시즘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텍스트적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독특한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푸가를 변주할 수 있는 자유의 규칙처럼, 알파벳 구조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 아포리즘은 독특한 악센트를 띤 파편의 수사법을 담고 있어 앞뒤 문맥에 대한 독해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언더 블루 컵』에는 60여 장이 넘는 컬러 화보가 실려 있다. 보는 즐거움 역시 이 책의 커다란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