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며 노래하지 않는 음악
‘악보들’은 우리가 음악이라 부르는 것 안에서 노래하는 음악과 노래하지 않는 음악이 뒤섞인 양상을 감각한다. 노래하는 음악은 꼭 사람의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음악이 아닌, “노래와 충분히 닮은 음악이다. 부를 수 있고, 보편의 호흡을 넘어서지 않고,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지 않으며, 신체를 긴장시키는 낯선 조합보다는 안정화된 패턴 안에서 움직이는 음악.” 노래하지 않는 음악은 그 반대 지점으로 움직이는 음악을 지칭한다. 물론 음악에서 이 둘은 늘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음악은 늘 두 방향 모두를 향해 열려 있다.
리토르넬로는 되돌아온다는 뜻을 지닌 말이자 합주와 독주가 되풀이되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 형식을 뜻한다. 바로크 시대 이후 이러한 리토르넬로의 원리는 음악의 일반적인 구조로 정착하면서 형식으로서는 흐릿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변주곡 안에서 이러한 원리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은 악보들이 찾는 긴장 관계, 즉 노래하려는 움직임과 노래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맺는 관계를 잘 드러낸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1837년: 리토르넬로에 대해」라는 글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왜 이러한 유형의 리토르넬로를 내부에서 변형시키고 탈영토화해 음악의 최종 목적인 두 번째 유형의 리토르넬로, 즉 음 기계에 속하는 코스모스적 리토르넬로를 만들어 낼까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의미에서 리토르넬로의 근본 원리는 어쩌면,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탐구하는 예술 형식에 숨은 비밀을 탐구할 실마리일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