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은 언어의 체계를 찾는 학문이며, 이 체계에는 당연히 언어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언어는 쉬지 않고 변화하고 있으므로 언어학에서 각 시대나 지역의 언어를 연구할 때에는 시간적 공간적 변화에 따른 언어 체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현대 한국어에 대한 연구 역시 오늘날 한국어 현실의 실제성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언어의 실제성에는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구어와 문어 등 언어의 실현 양상에 따른 다양한 모습도 포함된다.
한국어는 한국인들이 표현하는 구어(입말)와 문어(글말)를 포함하며, 표준어와 더불어 지역적인 방언과 사회적인 방언을 모두 포함하여 이루어진다. 최근 들어 한국어 언중들에게 표준어 외에 지역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한국어학자들도 문어와 함께 구어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 한국어의 사용과 연구 모두에 좋은 전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표준어에 비해 지역어(방언)에 대한 관심이 높지 못하듯이, 문어에 비해 구어를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성과가 많이 부족하다. 또한 언중들의 인식과 이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사용자 중심의 문법 개발도 필요하다.
언어학 연구가 문자 언어 일변도에서 음성 언어를 새로이 인식한 지도 한 세기를 넘기고 있지만, 아직도 구어보다 문어에 관심을 더 두고 있는 인식의 틀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한 예로 외국의 언어학에서나 한국어학 연구 논저에서도 실제 표현의 근거로 들고 있는 예문들은 구어보다 문어가 더 많이 나타난다. 물론 구어와 문어가 구분되지 않는 즉 구어에서도 문어에서도 통용되는 표현들이 대다수지만, 연구 대상이나 예문들에 구어적 표현보다는 문어적 표현이 훨씬 더 많다.
한국어 연구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거나 예문을 들 때 비교적 형식성이 높고 형태적으로 완형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문어를 선호할 수도 있지만, 좀 더 다양하고 변형이 많은 구어 역시 연구의 대상으로 가치가 충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언어학적 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어에 관심을 더 갖는 것은, 표준어가 방언에 비해 우월하다고 여기는 일반인의 의식이나, 지역어보다 표준어를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생각하는 한국어학자들의 인식에서 연유하는 점이 많다고 할 것이다. 소쉬르도 음성으로 실현되는 파롤의 중요성을 말하였지만 최근까지 세계의 언어학계에서는 구어보다는 문어의 문법 현상을 살피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제는 형식화한 표준어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자연성이 높은 각 지역어도 조명을 받아야 하며, 형식적이고 보수적인 문어에 비해 생동감과 다양함이 잘 드러나는 구어에 연구 시야를 넓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어학은 더욱 완성도를 높이고 실질성을 얻을 것이다.
구어와 문어가 별개의 다른 문법 체계를 갖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언어가 발화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양상을 일부 갖는 것은 본질을 바꾸는 것과 다르다. 그것을 이 책을 집필하면서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전까지 너무 문어에만 집중하여 문법을 논의해 왔으므로 일상생활에서 문어 못지않게 중요한 구어 위주의 문법을 좀더 개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함으로써 구어와 문어의 문법 체계를 한데 아우르는 올바른 한국어 문법 체계를 세울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앞선 단계로서 이 책에서는 구어 위주의 문법 체계를 살피는 것이다.
한국어문법을 구어와 문어 둘로 나누는 방식도 너무 도식적이다. 이 둘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오히려 대다수이며 구어나 문어 안에서도 텍스트에 따라 차이가 매우 많다. 그런 점에서 사용역별로 나누어 고찰한 내용을 종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앞으로 각 사용역에 따르는 문법체계 연구가 더 나와 통합적인 한국어문법의 체계를 완성도 높게 이루어야 할 것이다. 많은 곳에서 해석에 단정을 내리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여러 견해들을 보이는 것으로 그치기도 하였다. 이들은 구어 연구가 계속 진전되면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문법 현상을 설명할 때 인용하는 예문에는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출전을 밝히지 않았다. 그만큼 일반적으로 충분히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예문을 드는 것이 어느 특정한 출전에서 나온 특별한 예문보다 좀더 실제적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지역어나 집단어 등을 예문으로 들 때에도 그것이 널리 쓰이고 있다면 구태여 이를 밝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범위의 표현을 예문으로 들었으므로 이 모두가 한국어의 폭넓은 실제 모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