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 해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전주 사건, 즉 극단 ‘신건설 사건’을 다루는 발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극단 ‘신건설’과 관련한 연구사를 검토하고 당대 신문 자료와 경찰문서 등을 찾아보다가 ‘문득’ 그 관련자들은 어찌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알다시피 카프 맹원 대다수는 북한 체제를 선택했다. 그들 대다수가 북으로 갔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북한 매체에서 카프 관련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송영의 글 한 편을 만났다. 그 글의 내력은 이러하다. 1956년 북한에서 한효는 카프의 연극 활동을 포함한 「조선 연극사 개요」를 출판하며, 머리말에서 문헌 자료를 빠뜨리는 잘못을 범했을까 걱정한다. 카프의 동료이기도 했던 송영은 한효가 한 진짜 잘못은 “산 자료가(문헌이 아니라 당시의 연고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비판하며, “카프 이전의 극단 ‘염군’의 관계자인 나와 최승일, 추민과 탁진(메가폰 관계자), 라웅, 신고송, 강호(신건설 관계자), 리백산, 최병한(카프 동경지부 연극부 관계자), 김욱(랑만좌 관계자), 박춘명, 김일영(조선연극협회 관계자) 기타 안영일, 리서향 등등과 또는 오랜 무대 역사를 가진 박제행, 강홍식, 김련실, 황철, 심영 등등”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지적한다.
“산 자료가(문헌이 아니라 당시의 연고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야말로 진짜 잘못이라는 송영의 비판은 비단 한효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송영의 지적은 오늘의 한국문학 연구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산 자료”의 존재를 알게 된 우리 편자들은 해방 이후부터 북한에서 간행된 매체에서 카프를 회고하고 있는 글의 목록을 정리했고, 그 목록에 따라 자료를 수집했다. 대상이 된 매체는 「력사제문제」, 「력사과학」, 「로동신문」, 「근로자」, 「조선문학」, 「문학신문」, 「조선영화」, 「조선예술」, 「조선미술」, 「조선음악」 등이었다. 이 자료집은 북으로 간 카프 맹원들이 이들 매체에서 주로 1950∼60년대에 걸쳐서 카프를 회고한 ‘산자료’들을 모은 것이다. 이 자료집에 실린 필자들의 면면을 일별해 보면 한효, 한설야, 송영, 이기영, 박팔양, 추민, 조중곤, 윤세평, 박석정, 신고송, 엄흥섭, 박승극, 리령, 강호, 최승일, 라웅, 김련실, 김욱, 박춘명, 안영일, 박세영, 이갑기 등이다.
이 자료집에 미처 싣지 못한 글들이 더 존재한다는 점을 덧붙여야만 한다. 우선, 카프의 개별 작가에 대한 글들은 싣지 못했다. 문학 쪽의 조명희, 최서해, 이상화, 영화의 나운규, 미술의 김복진과 이상춘 등 카프 맹원이거나 카프에 동조했던 작가들의 특집이 여러 차례 꾸려졌다. 그 중에서 카프 미술부의 조직적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김복진과 이상춘에 대한 회고 글만을 싣고 다른 개별 작가들의 글은 추후의 작업으로 미루어 두었음을 밝혀 둔다. 또한, ‘신경향파’를 둘러싼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관련한 논쟁 글들도 적지 않은 분량 등의 이유로 추후 작업으로 미루었다.
여기서 북한에서 나온 카프 맹원들의 기억을 곧바로 ‘사실’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회고 혹은 구술은 그 발화자가 진술하고 있는 시점의 사회적, 개별적 맥락을 섬세하게 파악하면서 동시에 역사적 자료 및 입장이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진 회고와의 교차 검토를 통해서 검증될 필요가 있다. 북으로 간 카프 맹원들은 카프 시대와 카프 해산 이후에도 지속된 카프의 영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고의적으로 생략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카프 해산 이후 극단 ‘랑만좌’가 그 정신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면서 극단 관련자인 김욱이 남기고 있는 회고는 그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욱이 회고하는 ‘랑만좌’의 활동기간은 1938년부터 1940년까지로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무한・삼진을 함락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이때 랑만좌가 했던 연극은 전향한 일본 작가인 무라야마 토모요시(村山知義) 작의 「아편전쟁」 등으로 반영(反英)・반서구 담론에 충실한 레파토리를 포함했는데 김욱은 이것을 반제국주의적 실천이라고 의미화하고 있다. 북으로 간 카프 맹원들의 상당수가 식민지 말기에 제국의 국책에 부합하는 활동을 했는데 이에 대한 기억들은 삭제되거나 변형되어 제시되고 있다.
북으로 간 카프 맹원들은 북조선문예총을 카프를 계승한 혁명 문학예술의 정통으로 삼는 계보화를 통해서 남한에 남아 있는 전향한 카프 관련자는 물론 남로당 계열의 임화, 김남천 등의 카프 맹원들도 카프의 역사에서 배제했다. 한국전쟁 이후의 북한 매체에서 임화 등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헌영・이승엽이 이끄는 남로당에서 이른바 ‘문화 노선’의 중심이었던 임화, 김남천 등은 한국전쟁 직후 숙청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카프 시절을 회고할 겨를도 없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임화와 김남천 그리고 남로당 계열의 월북 문인들을 카프의 전통에서 배제하는 북한의 공식적인 문학사적 관점은 본 자료집에 수록된 송영의 「림화에 대한 묵은 론죄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본 자료집은 임화가 북한에서 남긴 특별한 저작의 윤곽을 가늠할 수 있는 글 한 편을 찾아 수록했다. 임화는 숙청되기 전에 「조선문학」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비록 팜플렛 정도의 얇은 분량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식민지 시기 임화의 조선문학사 서술의 방법론이 적용되었고 고전문학부터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의 조선문학사를 서술한 책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단행본은 출간된 사실은 확인되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 책의 개략적인 내용은 인민들에게 끼친 임화의 해독을 비판하는 윤세평의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윤세평은 임화를 비판하기 위해 「조선문학」의 서술 체계를 쫓아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한 홀대, 향가 해석의 반인민성, 용비어천가 등의 송가에 대한 고평, 한문학에 대한 임화 관점의 문제점 등을 비롯하여 현대문학에서 신경향파를 폄하하는 왜곡된 관점, 이태준 문학에 대한 고평 등 임화 저술의 세부적인 항목을 직접 인용하며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즉, 윤세평이 인용하는 내용을 이어서 보면 임화의 〈조선문학〉을 관류하는 관점을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아쉽지만 임화 저작의 실물이 발견될 때까지는 이러한 방식으로라도 조선문학사와 카프에 대한 해방 후 임화의 관점 등을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