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지금,
출구는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의 말과 내력과 기록 속에 있다.”
★ 최현숙(구술생애사 작가, 소설가) 강력 추천 ★
“기혼자 가능” “아줌마들에게 좋은 일자리” “고용지원금”
능력주의 노동시장의 민낯, 취약함의 노동은 우연하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반응은 ‘그 정도의 대우를 받을 만한 노동’이라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말이다. 이 말은 노동정책의 부작용과 노동시장의 온갖 불평등을 노동자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고 구조의 문제를 간과하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시험도 치지 않고 감히”, “정규직 전환은 역차별”이라는 공격적인 비난들 역시 능력주의에 근거를 둔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하기에 불안정하고 위험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 선택한 노동이기에 숨죽이며 자신 앞에 펼쳐진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총 11장에 걸쳐 기록된 톨게이트 투쟁 노동자의 이야기는 이들이 톨게이트 노동에 어떻게 당도하게 되었는지로 시작한다. “광고지 보고 들어갔는데 ‘기혼자 가능’ 이렇게 쓰여”(25쪽) 있어서, 하나센터에서 “고용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사장들이 북한이탈주민을 우선적으로 원하고 있다”(225쪽)는 말을 듣고, “도로공사 사장들이 주민센터 연결해서 복지카드 있는 사람들만 찾아다”(195쪽)니기 때문에, 3교대여서 아줌마들이 “집안일하고 겸해서 할 수 있는 일”(138쪽)이기 때문에 이들은 톨게이트 영업소에 발을 들인다. 이들의 증언 속에서 ‘고용지원금’, ‘3교대 업무’ 등의 덫을 놓고 취약성을 지닌 노동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정부와 기업의 잔인한 공모 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우연히’, ‘자연스레’ 톨게이트 노동을 시작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는 노동자들의 취약성을 기민하게 알아보고 이용하고자 하는 노동시장에 의해 필연적으로 생산되고 유지된다. 전주희의 해제에 따르면 이들은 노동자의 취약성을 담보로,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는 일을 열심히 수행하면 수행할수록 취약한 존재가 된다.”(393쪽) 사장은 ‘애인’을 만들어 노동자를 감시하고, 피복비, 식비 등 각종 비용을 횡령하고, 부당한 대우를 일삼고, 당일에 노동자를 해고하기도 한다. 이렇게 성희롱과 갑질로 버무려진 일의 세계를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견뎌냈다. 노동자들이 현재의 노동에 이르게 된 경로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추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글이 투쟁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옮기는 방식으로 쓰인 덕분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이 ‘능력이 없어서’ 지금의 노동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촘촘한 자본주의의 공모관계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에 당도하게 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능력주의적 사고가 가진 문제를 직시하고, 이들의 투쟁이 지닌 정당성과 의의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에 관한 올바른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라는 ‘온정주의’와 ‘자회사’라는 편법
그 가면을 벗긴 “표 끊는 아줌마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이틀이 지난 2017년 5월 12일 파견·용역노동과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87.4%나 되는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393쪽) 취임 4년 차가 되던 2021년, 정부는 이 비정규직 전환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역대 정부에서 이뤄진 정규직 전환 규모로는 최대였다(19만 2,689명, 2020년 6월 기준).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규정한 ‘정규직화’가 갖는 의미이다. 정부는 기업이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정규직 전환’이라고 규정했다. 한국도로공사가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주)’를 세운 것처럼, 다른 공공기관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자회사라는 편법을 이용해 ‘비정규직 제로화’를 실현하고 있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는 ‘온정주의’적 사고 아래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허울만 좋게 세워진 정책임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회사 전환’이 아닌 ‘직접고용’을 주장했고, 이로 인해 1,500명의 노동자가 집단해고 되었지만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톨게이트 지붕 위, 도로공사 본사 로비, 청와대 앞 아스팔트 바닥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구술기록의 대부분은 정부와 도로공사가 제시한 ‘자회사’라는 선택지를 의심하고, 투쟁을 결심하고,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면서도 연대의 힘으로 버텨온 투쟁의 풍경들을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인사도 없던 지사장이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자회사를 가면 임금을 올려주겠다 약속하는 것을 들으며 “뭔가 있구나, 의심을 하게 되고”(35쪽), “정규직 되면 풀 뽑고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229쪽)는 협박에도 직접고용을 택한다. “노동자를 갈라치기 하는 도로공사의 행태를 참을 수 없어”(87쪽) 본사를 점거하고, “우리가 하지 않으면 세상이 변하지 않고 노동자는 계속 부당한 대우를 받으니까”(289쪽)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발 디딘 곳의 불평등과 차별을 강인한 의지로 바꾸어 나가는 이들의 말은, 그 어떤 언론보도와 전문가의 말보다도 더 정확하게 우리 사회 노동정책이 지닌 문제와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직접고용과 복귀 이후 내 일을 찾는 투쟁
락스를 풀고, 풀을 뽑고, 졸음쉼터를 청소하면서
톨게이트 노동자의 투쟁은 성공했는가? 결국 도로공사는 해고를 철회하고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결정했다. 하지만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기존의 요금수납 업무가 아닌, 화장실 청소, 졸음쉼터에 떨어진 담배꽁초 줍기, 풀 뽑기 등이었다. 이는 “다른 직무로의 전환이 아니라, 일종의 모욕이자 보복의 결과였다.”(390쪽) 복귀한 노동자들은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무력감과, “사무직들이 우리를 벌레 보듯이”(321쪽) 하는 것 같다는 소외감 속에서 방황했고, “남의 일자리를 빼앗아서”(112쪽) 꿰차고 있다는 사실에도 미안해했다. 자신들이 정년퇴직을 하면 그 자리에 노동자를 뽑지 않겠다는, 그들의 일을 “곧 사라질 일자리”로 취급하는 도로공사의 태도에도 상처받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환경에 안주하거나,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포기하고 떠나지 않고, 투쟁의 시공간을 이어가고자 했던 이들의 결심이다. 노동자들은 오르지 않는 임금이나 여전히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자신과 후대의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맡을 수 있는 업무를 찾아내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기계화로 요금수납 업무가 곧 대체될 테니 그들의 고용이 “혈세 낭비”라는 주장에는, 기계의 오차를 보정하고 그것의 안내를 맡는 노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러한 주장을 반박한다.
구술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를 그저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선의를 베풀 듯 일자리를 제공했던,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면 “감히”라는 목소리로 이들을 배척했던 한국 노동시장의 불합리함을 깨닫게 된다. 더 나은 노동환경으로의 도약과, 모두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는 온정주의에 기반한 시혜적 태도나,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고 걸맞은 보상을 해야 한다는 능력주의적 사고로 실현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일을 지키고자 노동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