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글, 그림의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결합
“주요 인용문과 현대적인 그림 및 사진 자료를 창의적으로 결합해 매력적인 역사적 서술이 탄생했다.” _『혼북(The Horn Book)』
“엘리자베스 파트리지는 여러 목소리들을 담아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로런 타마키는 세 작가의 사진과 자신만의 정보를 담으면서도 멋진 분위기의 그림을 극히 매끄럽게 직조해 냈다.”_2023 「화이트레이븐스」
이 책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미 해군기지 폭격 장면과 이어지는 일본계 미국인의 체포 장면으로 시작된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비,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할 수 있는 결혼사진과 체포 장면을 대비하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로, 단숨에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이주 명령이 내려진 순간과 이주 과정에서 벌어진 일, 임시 집합소에서의 생활,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과 갈등이 벌어지는 긴박한 순간들,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상, 그리고 전쟁이 끝나서 수용소를 떠나는 모습까지, 글과 그림, 그리고 자료 사진이 정교하게 결합된 아름다운 장면이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펼쳐지며 독자들을 역사 속 현장으로 초대한다.
글을 쓴 엘리자베스 파트리지는 이 어두운 사건을 담백한 문장으로 서술하며, 자신의 생각을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독자들이 그 질문에 답하도록 촉구한다. 화가 로런 타마키는 일본계 캐나다인으로, 조부모가 제2차 대전 당시 캐나다 수용소에 갇혔던 상처가 있다. 이 책을 위해 많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면서 조부모 세대처럼 상처를 덮어 두기보다는 계속 떠올리고 이야기 나눌 때 더 깊이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세 사진작가들의 서로 다른 시선
『지운, 지워지지 않는』에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강제 수용 과정과 수용소 생활을 찍은 세 사진작가의 사진들이 담겨 있다. 도로시아 랭은 대공황 때 거리에 나온 이주민 실직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유명해진 작가로, 전쟁 격리 이주 당국의 요청을 받아 강제 이주 과정을 촬영하게 된다. 이주 당국은 강제 이주 과정이 “인도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기록용 사진”을 남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도로시아의 생각은 달랐다. 강제 수용은 불법이라며, 자신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이 평범한 미국인들을 “위협”으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감금된 상태이지만 가구를 만들고, 숙소를 꾸미고, 채소밭을 가꾸는 등 일본계 미국인들이 이 상황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려고 분투하는 모습을 생생히 담아냈다.
토요 미야타케는 맨재너 수용소 수감자 당사자였다. 그는 “나는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해. 이런 종류의 일이 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돼.”(59쪽)라고 결심한다. 몰래 ‘도시락 카메라’를 만들고 필름과 인화를 위한 약품을 외부에서 들여오는 위험을 무릅쓰며 수용소의 철조망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담아냈다. 그는 용감하게 도로시아가 촬영 금지당한 사진들을 찍었고, 또 공동체의 일원이라 가능한 사적이고 무방비 상태인 순간들을 찍어 진솔한 일상을 남길 수 있었다.
또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앤설 애덤스는 장대한 자연풍경을 주로 촬영한 사진작가이다. 맨재너 수용소 소장의 요청으로 수용소를 촬영하게 된 앤설은 수감자들이 근면하고 쾌활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했고, 맨재너를 살기 힘든 곳으로 보이게 하는 그 무엇도 보여 주지 않으려 했다.
도로시아와 앤설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같은 사건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로시아가 남긴 맨재너 수용소는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황량한 풍경이다(46~47쪽). 하지만 앤설이 담은 수용소 모습(92~93쪽)은 “우뚝 솟은 산으로 둘러싸인 사막의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풍경 덕분에 맨재너 사람들의 정신이 강해졌다고 믿”는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이 책은 이주 당국에 의해 도로시아가 촬영 금지당한 부분과 앤설이 촬영하지 않기로 선택한 부분까지 언급하며 독자들의 생각을 촉구한다.
차별, 인권, 소수자, 민주주의 등 다양한 생각거리
비인간적이고 참담한 격리와 강제수용이 일어난 것은 전쟁이 불러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진주만 폭격 이후에 일부 미국인은 일본군이 미국 본토를 다시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일본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부를 방해하고, 일본 잠수함이나 일본군에게 암호 무선 메시지를 보낼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퍼져 나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강제 수용에 대한 소송이 이어졌다. 일본계 미국인들은 그 어떤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도 않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미국 재판부는 이 강제 수용이 불법이라고 한 적이 없었고 제대로 된 보상도 없었다. 오히려 ‘아시아계 이민자는 모범적인 소수자’라며 애국심을 끊임없이 증명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아 왔다.
「전쟁이 끝난 뒤」 「단어가 중요한 이유」 「아시아계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시민권 침해」 「‘모범적인 소수자’라는 잘못된 신화」 등 차별과 편견, 인권에 관한 글과 글쓴이의 말과 화가의 말, 각 사진작가의 삶이 소개된 부록은 이 책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준다. 미국 사회의 본질과 시민권과 인권, 시민권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는 글이다.
책을 옮긴 강효원 선생은 이 책은 어느 공동체에나 있는, 낯설고 생소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전쟁이나 재해처럼 경험한 적 없는 커다란 위기가 닥쳤을 때, 분노와 두려움이 평소 생경했던 우리 사회 속의 낯선 존재들을 향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처한 상황에 따라, 우리는 낯선 이방인들을 손가락질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손가락질받으며 불이익을 당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 소식이 들려오고 한반도에서도 위태로운 대결이 이어지는 요즘,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깊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더 많은 성찰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강력하게 이야기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