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기획하며]
사람은 저마다 향기가 있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온 사람은 더욱 그렇다. 경진 신정식 회장은 수십 년 동안 열정적으로 책들을 수집해 왔다. 조선시대의 고서에서부터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는 귀한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물론 간다고 해서 모두 다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희귀본 수집가에게 이런 열정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열정만으로 수집가가 되기는 또 어려운 일이다. 열정 못잖게 책의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감식안, 책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까지 두루 갖추어야 비로소 그 책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된다. 그 책을 읽었을 사람을 상상하고, 바랜 빛에서 책의 향기를 느끼며 간혹 발견하는 흐릿한 메모나 낙서, 서명 등에서도 그 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수집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진 신정식은 책에 생명을 불어놓고 싶어 한다. ‘경진(耕珍)’이라는 호가 진귀한 것을 찾는다는 뜻을 품고 있다. 찾는다는 것, 발견한다는 것은 단순한 소유욕이나 경제적 욕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책이 가진 의미를 알아보고 책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경진 신정식의 생각이다. 저 자신의 의미를 지니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 책은 비로소 생명을 지닌다. 그래야만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향기를 지니며 자기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수집가와 책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경진 신정식은 잘 알고 있다.
_이재봉(부산대 국문과 교수) 「사람의 향기, 책의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