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는 생존 의지가 낳은 창조의 산물
지혜가 즐거움이 되면 문화로 남는다
척박한 환경, 제한된 세계를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저자가 찾아간 많은 곳이 환경적으로 ‘닫혀 있는 장소’인 바, 그는 어떤 것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창조성을 낳았다. ‘없는 상태’가 ‘있게 한다’는 의지를 낳으며, 이 의지의 표출이 삶에 이른 것이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면 미생물이 곧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몸속에 흐르는 ‘인간 이외의 시간’, 미생물이 만들어가는 시간의 참모습이야말로 발효 여정을 따라가며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그는 일본 문화 형성의 핵심 요소를 발효 탐방을 통해 파악한다. “지금껏 체험하며 눈여겨본 것은 어떤 상황도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강인한 의지와 회복 탄력성 및 다양성”이라는 그의 말은 이 점을 집약한 것이다. 결국, 발효의 역사는 ‘지혜’가 더 잘 살기 위한 ‘즐거움’이 되고 그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가 되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소멸 위기의 지역 문화의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의 말은 잠시 빌려본다. “전통의 본질은 ‘양식’이 아니라 ‘발상’이고 ‘스타일’이 아니라 ‘콘셉트’이며, 그것이 새 시대를 이루어갈 문화의 핵심이다.” 즉 로컬 문화의 미래를 좌우하는 게 ‘개인의 창조성’이며, 전통문화는 다가올 시대에 맞춰 새로이 콘셉트를 짜면 되면 그만이라는 말일까. 저자는 세상이 달라지면서 ‘없는 상태를 있게 하는 의지’야말로 살아있는 디자인의 원천이며 문화는 위기에 의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위기이므로 살아남는 것’이라 한다. 발효문화를 다각도로 심도 있게 바라보며 써 내려간 그의 통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깊숙이 일본〉 시리즈를 내면서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유독 두드러진 한국과 일본.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동안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두 나라를 오가는가 하면, 거대 담론에서 소소한 일상의 단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안이 숙제로 남아 있고, 해묵은 현안들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세인들의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깊숙이 일본〉은 지금껏 알려져 있거나 잘 모르는 일본의 이모저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며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심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획한 인문·예술 시리즈입니다. 번역서와 국내 필자의 저작물을 망라하며, 균형 잡힌 시각과 접근을 토대로 가교(架橋)역할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