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말
이 책은 에릭 홈스봄의 『역사론』에 실린 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과학의 진전과 ‘partisanship’의 관계를 언급하는 부분을 번역하며 역자들은 한국어 교육의 진보와 방향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본문을 번역하고 수정하는 내내 언어와 문화를 학습하는 교실에서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언어 교실에서 그 가치를 실천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영어가 쥐고 있는 막강한 힘과 유럽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의 언어·문화적 고민이 한국어의 상황과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언어 교육의 지향점을 향해 가며 하나씩 짚어 나가는 정책·학교·교사·연구·정치·정체성·사회화·평가 등은 모든 언어 교육을둘러싼 공통 맥락임이 분명합니다.
공동 번역자들은 한국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며 다양한 문화 배경의 학습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경험하는 역동적인 관계를 매일 목격합니다. 한국어 학습자와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은 친구, 교사, 가족, 친척, 교우(敎友), 직장 동료, 관리자, 관공서 직원 등 모두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어 학습자는 교실 밖에서도 한국어를 매개로 ‘사람, 사회, 문화’를 만납니다. 그들에게 한국어 학습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의 하나이며, 그들에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지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상호문화시민성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 책에서 저자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외국어 학습 교실에 필요한 것은 회피나 극단적 상대주의가 아니라 공통의 가치를 찾는 실천이라고 주장합니다. 외국어 교육 현장에서 상호문화적 만남의 증거와 가능성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을 한국어로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교육학, 사회학, 철학, 정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이론적 근거를 통해 논의의 폭넓은 배경을 이해하는 희열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