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 카 뮈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1913년 알제리의 소읍인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농장의 노무자였던 아버지는 1914년에 전사하였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여자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여 그는 자동차 부속품상, 알제리 총독부 고용인, 기상대 요원, 해운(海運) 중개인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며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철학을 전공하여 문학사(文學士) 학위를 받았지만, 그 후 결핵을 앓게 되어 교수 자격 시험은 포기하고 말았다.
학생 시절에는 ‘노동좌(勞動座)’라는 극단을 조직하여 자신이 배우 겸 단장이 되어 연극에 열중하기도 했다. 여러 작품의 희곡을 각색하기도 했으며, 카뮈 자신이 오비에도 갱부들의 폭동을 주제로 쓴 〈아스튀리의 반란〉과 그 밖의 몇 편은 당국의 상연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 앙드레 말로의 〈모멸(侮蔑)의 시대〉, 빌드락의 〈상선(商船) 테나시 티〉, 벤 존슨의 〈침묵의 여인〉 등을 각색 상연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는 그가 이반 역으로 무대에서 열연하기도 했다.
그 후 처음에는 알제리 시에서, 그 다음은 파리로 건너가 기자 생활을 하던 중 2차대전을 만나 독일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프랑스가 해방될 무렵에는 《콩바 Combat》지(紙)의 주필로 활약하여 1945년 사임할 때까지 세인(世人)의 이목을 끌던 그 탁월한 사설은 《악튜엘 Actuelles Ⅲ》 가운데 수록되어 있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그의 활동은 눈부시게 계속되었다. 특히 그는 핍박과 예속으로 허덕이던 사람들을 옹호하였으며,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쓰러지는 많은 희생자들을 격려하였다. 참혹한 알제리 전쟁 중에는 휴전을 위한 호소에 앞장섰는가 하면, 사형 폐지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카뮈는 앙드레 말로의 주선으로 《이방인 L’Étranger》(1942)을, 유명한 갈리마르사(社)에서 간행했고, 이어 《시지프의 신화》(1943)도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냈다. 종전 후 희곡 〈오해〉, 〈칼리굴라〉를 각각 1945~46년에 상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전후에 쓴 것으로는 〈계엄령〉(1948), 〈정의의 사람들〉(1949)이 상연되었다. 1946년에는 미국을 방문했고, 그 다음에 《페스트》를 발표하자 그는 일약 전후 세대의 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문명(文名)을 떨치게 되었다.
1951년에는 에세이 《반항인》이 발표되었다.
- 《이방인》에 대하여
《시지프의 신화》보다 1년 전에 발표된 《이방인》은 한마디로 허무의 철학적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며 독자는 그 구체적 형상들의 배후에 있는 심오한 사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이 소설은 수많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인물들과 배경과 스토리를 가진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다. 주인공 뫼르소는 평범한 일개 사무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사망 전보가 날아오고, 그는 더위 속에서 무덤덤하게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날 마리라는 여자와 관계를 맺고 나중에는 어느 건달의 친구가 된다. 그 친구를 안 인연으로 말썽에 휘말리고 마침내는 그가 아랍인 한 사람을 쏘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판결을 받고, 사형집행을 기다린다…….
그저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는 농도 짙은 허무의 세계가 응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뫼르소의 삶은 무의미한 것이다-이것이 바로 소설의 중심 테마이다. 어떤 목적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념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정리되는 삶도 아니다. 그의 삶은 그저 맹목적으로 자동적으로 전개될 뿐이다. 그는 사랑도 회한도 환희도 모르는 인간이다. 가장 인간적인 감동도 그를 뒤흔들어놓지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도 마리의 사랑도, 뫼르소를 그 수동적이고 따분하고 지친 마비 상태에서 끌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방인》은 허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끝내 허무함으로 끝나는 작품은 아니다. 뫼르소는 드디어 폭발적으로 반항을 함으로써 그 무거운 ‘일상(日常)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추악할 만큼 ‘일상적 삶’의 맹목적 자동성에 혼합되었던 그가 드디어 ‘자유를 전취’했고, 다시 잠재우려는 ‘희망의 유혹’을 물리쳤으며, 죽음에 직면하여 본능적으로 자살이 아닌 ‘반항’을 택한 것이다. 그 보답으로 그는 감각이 풍부한 삶과 현순간에 놀라울 만큼 절묘한 맛을 얻는다.
“허망은 죽음의 의식이며 동시에 그 거부이다. 그것은 사형수의 머리에 떠오르는 최후 상념의 맨 끝에 나타나는 구두끈- 바로 몇 미터 앞에 그 아찔한 자기 전락(轉落)의 바로 막바지에-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그 어처구니없는 구두끈이다. 자살자의 반대는 사형수다”라고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밝히고 있다.
《이방인》이 발표되자 이 작품은 실존주의의 문학적 승리로서 평가되었다. 2차대전을 전후해서 세계에 실존주의 작품이 선풍을 일으킨 것은 바로 카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의 일련의 철학적 이론 때문이었다. 카뮈는 실존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런 경향에 속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이 《이방인》을 “건조하고 깨끗한 작품, 외관상으로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잘 짜인 작품이며 너무나 인간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상의 해설은 루페(Robert de Luppé)의 〈알베르 카뮈론〉에서 ‘이방인’에 관한 대목만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루페는 소르본 대학을 나온 철학과 문학 교수로서 〈문학에 의한 해방〉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은 바 있기도 하다. 특히 현대 철학과 문학을 전공, 그 첫 저작으로 이 〈카뮈론〉을 내놓았다.
- 《전락》에 대하여
《전락(轉落:La chute)》은 카뮈가 모든 정치 활동에서 은퇴한 후 언론계로 복귀한 1955년 그의 나이 41세 때 간행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어느 작품보다도 허무의 우수(憂愁)가 짙게 깔려 있다.
어두운 비췻빛 운하와 비둘기 떼들이 높이 나는 음산하고 축축한 지옥 같은 적지(謫地)에서 주인공 클라망스는 어떻게 자기가 전락하게 되었는가를 집요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센 강의 다리를 건너갈 때, 물 속으로 뛰어드는 여자를 보고서도 구하지 않고 지나친 이후로 그는 까닭 모르는 웃음소리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클라망스로 하여금 과거의 자기를 돌아보게 한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마침내 지금까지 그의 명성과 덕망이 모두 위선에서 비롯된 허위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기는 결백하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현대인의 유죄성(有罪性)을 밝혀 내어 우리는 모두 비슷한 죄인임을 유추시킨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하여 부조리(不條理)와 모순(矛盾)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초상화를 그려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클라망스의 마음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참자아를 일깨우는 양식의 소리일 수도 있다. 그것은 듣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자신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 옮 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