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History)와 헤리티지(Heritage)
쇼펜하우어는 무엇이 좋은 책인가에 대한 판단 능력이 부족할 시에는, 차라리 고전(古典)을 집어 들라고 조언한다. 인류의 통시적 공시적 선택으로 증명된 콘텐츠, 일단 이 인문학적 보편성의 토대 위에서 지평의 확장을 꾀하라는 것. 저자는 럭셔리 브랜드가 지닌 역사성을 고전의 가치에 비유한다. 사조와 경향, 유행 사이에서 흥망성쇠를 겪으면서도 끝내 도태되지 않은 생명력은 그 토대 위에 다시 사조와 경향, 유행을 한 겹 덧입힌다. 럭셔리 브랜드에는 과거와 현재가 모두 담겨져 있으며, 미래 또한 잠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경제적 체험적 인문이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이미지’를 소비한다. 럭셔리 브랜드는 단지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역사로 일구어 온 문화를 판매한다. 더 나아가 의미를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그런 상징성을 향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소유한다. 에르메스와 디올은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의 상품을 구매하라고 광고하지 않는다. ‘아직도 이 가방을 갖고 있지 않은가?’를 스스로 되묻게 한다.
물론 소비 진작을 위해 이 책을 저술한 것은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상징가치를 자본으로 전환하는 경영전략과 철학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럭셔리의 창업자들은 금수저 출신보단 흙에서 일어나 자수성가한 이들이 많다. 한순간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고전의 가치처럼 오랜 시간동안 현재진행형일 수 있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저자의 박사 논문 주제와 연관이 있기도 하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닌 인문적 관점에서까지 들여다본 럭셔리에 관한 이론, 저자는 출간 원고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쓸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들여다봤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점을 둔 요소는 인사이트와 재미다. 관심으로 이 책을 집은 독자들이, ‘럭셔리, 재밌네!’라는 기억을 안고 이 책을 덮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 자신은 치열하고 치밀하게 작업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