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죽음은, 내면의 천사가 완성되는 축제
“클레가 그린 천사 형태들은 이전에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으며 …
가시적으로 만들어진 적도 없었다.”
클레 안에서 생겨나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천사!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의 천사 그림은 어딘가 아이러니한 유머를 띠고 있다. 아이가 그려 놓은 듯 우스꽝스러운 데다 하나같이 천진스러우면서도 그 이면에는 퇴폐미술가라는 오명,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같은, 비극 상황에 대한 고뇌가 있었다. 이 책에서 천사는 그 무엇 하나 완성된 형체가 없다. 다만 클레의 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천사가 되고자 변화하는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계속 만지고 있는 천사" "자주 잊어버리는 천사". 파울 클레의 천사 그림은 명칭에서부터 천사에 대한 일반 관념에서 비껴나 있다. 클레 작품에서 등장하는 천사 그림은 외양으로 보아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이기보다는 차라리 인간과 천사 그 사이의 존재쯤으로 보인다. 천사라고는 하지만 하늘을 날기는커녕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며, 날개는 있는 둥 없는 둥 하는 게 아름답다거나 숭고하다는 느낌은 여기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에서 천사 그림들은 천사의 다양한 생성 변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완성된 천사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불완전한 실패작들의 다양한 버전을 보여 준다. … 클레의 그림에서 천사는 미의 극치일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있다” “여기서 천사가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 죽음은 천사와의 만남, 천사의 완성의 순간이므로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라고 옮긴이 조정옥 교수는 말한다.
“천사는 어떻게 날 수 있는가?”
“자신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클레 안의 천사, 죽음으로 완성되다
천사 그림이 작품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파울 클레의 지난한 만년에였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몇 해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지 얼마 안 되어 집이 수색되고, 편지들이 잠정 압수 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작품은 퇴폐미술로 낙인찍혀 변종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 이 일로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교수직까지 박탈당하게 되자 그는 고향 베른으로 기약 없이 떠나게 된다. 거기다 피부를 굳게 해 전신을 마비시키는 피부경화증이 발병하게 되면서 클레의 손은 점차 움직임이 제한되어 갔다. 이 즈음해서 천사 그림 시리즈가 탄생한다. 클레가 천사를 주제로 그린 작품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가 죽음을 앞둔 2년 동안에 창작되었다. 이전까지의 작품 세계에서 천사 그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시기에 많은 그림이 그려졌던 것은, 아마도 죽음이 가까워 오고 고통이 극심해져 갈수록 천사가 클레 안에서 생성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선명해져 갔기 때문일 것이다. 조정옥 교수에 의하면 클레는 “보통의 통념과는 달리 죽음을 우리 내면의 천사의 완성으로 여겨 하나의 축제”로 보고 있다. 철학자 주세페 디 자코모는 “클레 작품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완성된 형태와 완성되지 않은 형태의 경계”라고 말한다. 클레에게서 천사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생성 중에 있고 천사가 되려고 애쓰는 중에” 있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에 바탕을 둔 잉그리트 리델의 섬세한 분석
“이 책은 천사 그림 모음집이자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영향을 받았고 현재 미술치료사이기도 한 잉그리트 리델은 이 책에서 파울 클레의 천사 그림을 분석해 나간다. 집단무의식, 아니마, 자아와 자기 개념, 시선의 방향과 무의식의 관계 등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한 리델의 정교하고도 치밀한 분석은, 작품의 구도와 아울러 천사를 이루는 선 하나하나를 이해하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저자가 천사를 추적해 가는 동안에 우리는 변화하는 천사들, 그 속에서 다가올 죽음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클레의 담담한 태도와 비로소 죽음으로 완성되는 천사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