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공양전春秋左氏傳≫, 한漢나라의 기틀을 세우다
≪춘추≫의 문장은 구성이 몹시도 간결하다. 전후사정ㆍ앞뒤맥락 모두 자르고 핵심만 실어놓았다. 이 때문에 공자의 저작이 맞는지 진위 논쟁이 항상 따르고, 해설서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공양수公羊壽가 지었다고 전하는 ≪춘추공양전≫은 춘추 해설서 가운데 ≪춘추≫의 문장 구성과 서례書例 가장 상세히 밝혀놓은 책이다. 글자 하나도 의미 없이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문장 속 미언微言大義를 찾는 데 주력하였다. 내용 전달은 ≪춘추좌씨전≫보다 다소 소략하나, ≪춘추≫를 해석하여 의미를 전달함에 있어서는 충분히 소임을 다하고 있다.
≪춘추공양전≫은 춘추삼전春秋三傳 가운데 한漢나라에서 처음으로 학관學館이 설립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진秦나라ㆍ초楚나라와 전쟁하던 한나라가 중원을 통일한 초기에는 시대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고 나라의 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한 경제漢景帝 시기 오경박사五經博士였던 동중서董仲舒가 ‘대일통大一統’을 중심으로 한 ≪춘추공양전≫ 사상을 정치이론과 결합하여 황제의 권력 강화에 사용하도록 권하였고, 이후 무제武帝가 즉위한 뒤 이를 적극 수용하였다.
그러나 후한後漢에 들어서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게 점차 위상을 빼앗겨 위기 의식을 느낀 ≪춘추공양전≫은 잘못된 경전 해석을 시도하거나 참위讖緯와 결탁하는 등 한계를 맞이하였다. 이에 하휴何休가 ≪춘추공양경전해고春秋公羊經傳解詁≫를 지어 공양학의 내실화 및 종합화에 힘쓰고, 당시까지 전하던 공양학公羊學 연구를 완성하였다. 그 결실로 ≪춘추공양전≫이 일실逸失되지 않고 후대까지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공양학公羊學 연구의 정수精髓인 ≪춘추공양전주소春秋公羊傳注疏≫는 공자孔子의 ≪춘추春秋≫, 공양수公羊壽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하휴何休의 ≪춘추공양경전해고春秋公羊經傳解詁≫, 서언徐彦의 ≪춘추공양소春秋公羊疏≫ 등 총 4종의 저술을 동일한 장절章節마다 묶어 편집함으로써 한 눈에 볼 수 있게 완성한 책이다. 분량은 전 28권이며, 경經-전傳-주注-소疏 순서로 그 내용을 확장하고 부연함으로써 ≪춘추≫의 본의本意를 보다 심층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서언은 하휴가 수립한 예例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고, 귀납적인 방식으로 논리를 종합함으로써 하휴의 주注를 더욱 원활히 소통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역주譯註 춘추공양전주소1≫, 공양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다
본서는 ≪춘추공양전주소≫ 1책으로 〈흠정사고전서총목欽定四庫全書總目 춘추공양전주소春秋公羊傳注疏〉, 서언徐彦의 〈춘추공양전주소서春秋公羊傳注疏序〉, 은공隱公 원년~11년까지의 내용을 다루었다.
그 내용으로는 ≪춘추≫와 ≪춘추공양전≫의 저술 의미를 밝히고, 경문經文의 시작이자 논란의 중심인 ‘춘왕정월春王正月’의 해석과 이견異見을 고찰하며, ‘대일통大一統’과 ‘존왕양이尊王攘夷’로 종합되는 공양학의 의리를 밝혔다. ≪춘추공양전≫ 특유의 문답체問答體 구성이 전傳-주注-소疏를 넘나들며 제시되고, ‘삼세이사三世異辭’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춘추≫의 역사를 세 시대로 구분하여 시대별로 구사한 필법이 다름을 주장하였다.
본서는 청淸나라 완원阮元이 교각校刻한 중화서국본中華書局本 ≪춘추공양전주소春秋公羊傳注疏≫를 저본으로 삼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현대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또한 저본에 인용된 많은 전적의 내용과 인물을 정확히 찾아 역주로 밝혔으며, 춘추학春秋學에 관심이 있는 독자를 위해 친절한 번역을 추구하였다. ≪춘추공양전주소≫는 향후 총 7책으로 완역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