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삼국지三國志의 관우關羽도 애독한 ≪춘추≫ 해설서
≪춘추≫의 문장은 구성이 몹시도 간결하다. 전후사정ㆍ앞뒤맥락 모두 자르고 핵심만 실어놓았다. 이 때문에 공자의 저작이 맞는지 진위 논쟁이 항상 따르고, 해설서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좌구명左丘明이 지었다고 전하는 ≪춘추좌씨전≫은 춘추 해설서 가운데 역사적 사건과 맥락을 가장 상세하게 밝혀놓은 책이다. 문장 구성과 글자 풀이에 주력한 타 해설서들과 달리 역사책의 성격이 짙다. 그만큼 내용을 이해하는 데 탁월하고, 누구나 술술 읽으며 맥락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춘추좌씨전≫이 등장한 이후 그 매력은 동아시아 전역에 퍼지며, ≪춘추≫를 이해하는 핵심서로 자리 잡았다. 문신ㆍ무신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탐독했는데, 현재 서울 동묘東廟의 전신前身인 동관왕묘東關王廟의 주인공, 삼국지의 관우關羽도 ≪춘추좌씨전≫을 암송할 정도로 좋아하였다고 한다.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 ≪춘추좌씨전≫ 연구의 종합서
≪춘추좌전정의≫는 ≪춘추≫에 대하여 주周나라 좌구명이 전傳을 짓고, 진晉나라 두예杜預가 주注를 달았으며, 당唐나라 공영달孔潁達이 소疏를 지어 완성하였다. ≪춘추좌씨전≫이 나온 뒤로 수많은 학자들이 저술을 남겼지만 두예의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만한 책이 없었으므로, 당나라에서 ≪오경정의五經正義≫가 편찬될 당시에 공영달이 이 책에 근거하여 사건의 시비是非를 논쟁하거나 첨삭添削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춘추삼전春秋三傳은 모두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반열에 올랐는데, ≪춘추공양전주소春秋公羊傳注疏≫(전28권)와 ≪춘추곡량전주소春秋穀梁傳注疏≫(전20권)에 비하면 ≪춘추좌전정의≫는 전60권에 달하여 분량이 2~3배 가까이 많다. ≪춘추좌씨전≫의 보급과 영향이 두 전傳에 비해 방대함을 증명하는 셈이다.
≪역주譯註 춘추좌전정의2≫, ≪춘추≫ 시작을 열다
본서는 ≪춘추좌전정의≫ 2책으로 노 은공魯隱公 3년에서 환공桓公 2년까지의 내용을 다루었다. 1책에서 노나라의 첫 군주로 등장한 은공의 행적이 3년부터 11년까지 기록되어 있고, 이후 환공이 은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임금이 되어 2년까지 집권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기할 만한 사건으로는 첫째, 위衛나라 대부大夫 석작石碏의 대의멸친大義滅親이 그것이다. 전대前代 임금을 시해하고 군주가 된 위衛나라 주우州吁를 처단하고자, 주우를 따르던 자신의 아들 석후石厚까지 속이고 진陳나라에 힘을 빌려 그들을 몰아낸 일이다.(은공 4년) 둘째, 주周나라가 경사卿士인 범백凡伯을 노나라에 보내 빙문聘問하였는데, 그가 돌아가는 길에 융戎에게 납치되었다. 이는 당초에 주나라에 조현朝見하러 왔던 융戎을 범백이 빈객貴賓의 예禮로 대우하지 않았던 일에 의거한 것이었다.(은공 7년) 셋째, 정鄭나라가 자신들 소유인 팽전祊田과 노나라 소유인 허전許田을 바꾸자고 요청하였다. 이는 천자에게 조현하기 위한 비용을 충당하고자 주나라로부터 받은 땅이었는데, 위치상 서로의 나라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정나라가 요청하고 노나라가 이를 승인한 것이다.(은공 8년, 환공 원년)
본서는 청淸나라 완원阮元이 교각校刻한 중화서국본中華書局本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를 저본으로 삼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현대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전통문화연구회에서 협동연구번역을 통해 ≪오서오경독본五書五經讀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완간한 번역진이 춘추학春秋學 연구의 연장선으로 진행하는 ≪춘추좌전정의≫는, 향후 총 19책으로 완역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