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부산을 둘러싼 바다, 그 바다가 주는 황홀한 경관을 사람들은 더 이상 자연이 주는 선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경치 좋은 곳을 선점하여 건물을 올릴 것인가 골몰하기 바쁘다. 그 자리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풍경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다. 옛 마을의 역사가, 주민의 추억이, 죄 없는 자연이 가차 없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는 ‘○○동 마지막 오션뷰 아파트’, ‘전 세대 오션뷰!’라고 으쓱대는 현수막들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다. 그렇게 모두가 누려야 할 공유재산이 고층 “오션뷰”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는 일부 부자들의 전유물이 된다.
호주 시드니에 더들리 페이지라는 평지가 있다. 시드니항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이다. 그 땅은 원래 더들리 페이지라는 인물의 개인 부지였다. 이 사람은 그곳의 멋진 전망을 혼자 보기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앞쪽에 어떤 건물도 짓지 않는 조건으로 이 부지를 시드니시에 기부했다. 이처럼 자연은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일까. - ‘들어가며’ 中
우리가 잊어버린, 그리고 잃어버린 부산의 역사와 자연을 기억하고자
100만 걸음을 직접 걷고 쓴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록
『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는 도시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마구잡이로 굴을 뚫고, 다리를 놓고, 건물을 올리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또한 우리가 잊지 않고, 꼭 기억해야 하는 역사와 삶의 흔적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눈을 의심케 하는 도심 속 황토 벌판〉에서는 재개발과 아파트 공사로 황폐화된 7곳에 대해 썼다. 2부 〈망각을 바라는 흔적 유실의 현장〉에서는 우후죽순 들어서는 건물에 밀려나고 지워진 옛길에 담긴 추억과 사연을 이야기한다. 3부 〈파도가 덮치는 몽돌이 쓸리는 해조음〉에서는 과거와 현대, 변화와 정체 사이에 놓인 다양한 도시의 흔적을 다룬다. 이렇듯 저자는 자본과 욕망의 굴레 속에 처참히 삭제되어 가는 도시의 면면을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비추며,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길에 자연, 공존, 역사 등의 가치가 담겨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