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귀, 간통하는 여성, 가난한 자, 도적…
조선의 불온한 주체들 현대의 독자를 찾아오다
『포도대장 장지항과 의도 일지매』에 장지항과 일지매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원한을 가진 여자 귀신이 여럿 등장하고, 남편에게 매 맞으며 사는 한 여성은 다른 남성과의 행복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감옥에 갇힌 일지매가 자신을 잠깐만 풀어 주면 평생 먹고살 돈을 주겠다 하자 그를 놓아주는 가난한 옥졸도 있다. 이들 불온한 주체들은 『포도대장 장지항과 의도 일지매』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며 이야기를 훨씬 더 다채롭게 만든다.
한편 이야기 속 귀신, 간통하는 여성, 빈자가 겪는 문제는 개인의 결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발 딛고 사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현실 질서를 바탕으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장지항의 방식은 불완전하면서 균열의 지점을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지매의 방식이 완전한 해결책이 되어 주지도 않는데, 이는 일지매가 현실 질서에 어느 정도 타협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결국 『포도대장 장지항과 의도 일지매』는 현실 질서(장지항의 세계)와 그 질서 바깥의 영역(일지매의 세계)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선택을 하지 않고, 두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들을 보여 줌으로써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 두 세계 중 어떤 세계를 더 지지할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이다.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포도대장과 탐관오리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의적 일지매의 대결. 이는 정의롭게 구현되는 공권력에 대한 동경과 부조리한 현실을 법 바깥에서 바로잡으려는 욕망의 충돌과 다르지 않다. 당대 딱지본 대중 독자들은 둘 중 무엇에 더 열광했을까?
-추천사 中
100년 전 이야기를 읽는 현대의 독자들은 과연 장지항과 일지매 중 누구의 목소리에 더 공감하게 될까? 누군가는 장지항과 일지매 같은 이야기의 주된 목소리보다 부수적인 인물들의 작은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고, 이야기 속 목소리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목소리를 꿈꿀 수도 있다. 독자라는 존재는 언제나 텍스트보다 더 멀리 나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포도대장 장지항과 의도 일지매』의 세계 역시 독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버전의 이야기로 성장과 갱신을 거듭하리라 기대한다.
▶ 넘쳐나는 상상력 속 끝없이 이어지는 세속의 이야기, 두두 딱지 시리즈
두두 딱지 시리즈는 ‘너저분하고 잡스러운 세속의 이야기’를 모토로 딱지본 소설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선보인다.
딱지본 소설은 20세기 초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았으나 이후 근대 소설에 미달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학장에서 잊힌 작품군이다. 딱지 시리즈는 근대 소설의 규범과 기준에 얽매여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와 그 속에 담겨 있는 정제되지 않은 욕망들에 주목했다. 이 ‘미달’의 이야기들 속에 ‘넘쳐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 그리고 상상력은 100년 전 독자들이 그러했듯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들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그러나 불완전하고 모자란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편의 완전하고 완벽한 이야기가 아닌 시리즈로 구성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딱지 시리즈는 ‘이야기의 한계는 이야기로 채운다’는 마음으로 작품 리스트를 쌓아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