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한 논리로 동물에게 권리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다!
‘본래적 가치’를 갖는 ‘삶의 주체’인 동물을 윤리적으로 처우해야 한다고 주장
결과론에 바탕을 둔 싱어의 ‘동물 해방론’과는 다른 입장에서 동물권을 옹호
레건은 동물을 윤리적으로 처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 중에서 동물에게 절대적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학자다. 그에 따르면 오직 본래적 가치(inherent value)를 갖는 존재들만이 권리를 갖는다. 본래적 가치란 개체들이 자신들의 선함 혹은 다른 존재들에 대한 유용성과는 독립적으로 갖는 가치이며, 권리란 이러한 본래적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오직 삶의 주체(subjects-of-a-life)만이 본래적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오직 자의식이 있는 존재, 곧 믿음과 욕구를 가질 수 있는 존재만이, 그리고 오직 미래를 생각하고 목표를 가질 수 있는 신중한 행위자만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레건은 근본적으로 보았을 때, 정신적으로 정상인 한 살 이상의 모든 포유류가 삶의 주체이고, 이에 따라 그들이 본래적 가치를 가지며,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삶의 주체가 갖는 권리들은 도덕적 권리이며, 이는 법적인 권리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법적인 권리는 법의 산물이며, 사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도덕적인 권리는 피부색, 국적, 성, 그리고 레건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종(species)과 무관하게 모든 삶의 주체에게 귀속된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동물의 권리를 말할 때, 사람들은 투표를 할 암소의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모르모트의 권리, 또는 고양이의 종교적 자유를 누릴 권리(이는 미국 성인들이 갖는 세 가지 법적인 권리이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 가치를 갖는 개체로서 존중받을 동물의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레건에 따르면, 본래적 가치를 갖는 존재들은 어떤 존재이건 이러한 권리를 동등하게 갖는다. 본래적 가치는 덕스럽게 행동함으로써 얻어지거나, 사악하게 행동함으로써 상실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팅게일이나 히틀러는 삶의 주체라는 사실에 의해, 그리고 그러한 사실만으로 동등한 본래적인 가치를 갖는다. 본래적인 가치란 일시적 유행이나 인기, 특권 등에 의해 확대되거나 감소되지 않는다.
동물을 둘러싼 윤리적 현안에 철학적 배경 제공 기대
동물 윤리 분야에서 국내 연구를 주도한 학자들의 번역
국내에서도 동물을 둘러싼 현안들이 지속적으로 윤리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물성 단백질의 과다 섭취, 공장식 농장에서의 동물 학대 문제, 주기적인 구제역 발생 및 그에 따른 살처분 문제, 반려 인구의 증가에 따른 유기견·유기묘 문제 등이 대중들의 관심이 높은 현안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러한 관심은 정서적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배경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도덕 추론의 전형을 보여준 『동물권 옹호』의 출간이 눈길을 끄는 까닭이며, 국내에서 동물 윤리 연구를 이끌어온 연구자들의 번역이라는 점도 이번 한국어판 출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인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논의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톰 레건과 피터 싱어의 저술 중 후자의 저술은 상당수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고, 그만큼 그의 주장은 국내 학계나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물 윤리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레건의 저술은 단 한 권도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레건의 대표작인 『동물권 옹호』가 대중서라기보다는 매우 분석적이고 전문적인 철학책에 가깝고, 그 양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동물권 옹호』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논의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관련 분야에서의 고전이다. 국내 연구자들 또한 동물 윤리 연구에서 예외 없이 레건을 언급하는데, 그럼에도 그의 저작의 핵심만을 참고하다 보니 전후맥락을 간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번 한국어판의 출간은 레건의 입장을 좀 더 심도 있고 정확하게 조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동물 윤리의 논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