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3세가 수집하고 기록한 첫 ‘재일조선인미술사’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아야 했던 약 60만 명의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당하고 ‘무국적자’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옛 종주국의 차별과 분단된 조국의 현실, 정체성의 혼란과 같은 여러 질곡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 재일조선인 3세로 태어나 미술을 전공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껏 조명된 적 없는 선대 미술가들의 역사를 찾아가는 동시에 실존을 걸고 자신의 뿌리를 밝히고자 했다. 번역자이자 학문적 동지인 노유니아가 말했듯 스무 살 무렵까지 일본의 공적 교육 기관에 적을 둔 적이 없었던 그녀가 ‘국립’ 대학의 합격증을 손에 쥐기까지, 그리고 일본 최고 수준의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재일조선인들의 미술사 연구로 인정받기까지의 도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저자가 20년간 걸어온 노력과 인내의 산물이다.
문학계와 역사학계에서, 또한 최근의 디아스포라 문화 담론에서 재일조선인(재일코리안)의 흔적을 뒤쫓는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문화 영역에 비해 미술 관련 연구는 몇몇 작가에 한정된 단편적인 연구에 그쳤다. 더구나 해방 직후의 재일조선인이 펼친 미술 활동은 거의 암흑 속에 놓인 상태다. 이 책에서 다룬 재일조선인의 작품 대부분은 “이런 힘든 시기에 무슨 미술이야?”라는 말을 듣던 시대에 창작되었다. 미술가가 살아온 삶의 증명이 미술이라고 할 때, 자신들의 존재 가치마저 부정되었던 시기였던 셈이다. 이 책의 부제를 ‘미술가들과 표현 활동의 기록’이라고 붙인 까닭은 여기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거장과 걸작, 주류의 가치관을 넘어선 ‘생활의 미술사’
대부분의 미술가들에게 미술 활동은 생활의 연장선이기에 미술가들의 표현 활동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재일조선인의 삶을 밝힌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분석 대상으로 다룰 미술 작품이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미술 내적인 기준과 문제에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1962년 자신들의 손으로 펴낸 첫 화집에 등장하는 군상 속 투박한 인물들의 분노, 절망, 희망에 가득한 얼굴들과 마주할 때, 우리는 당시 뜨거운 사건의 현장 속으로 순간이동하게 된다. 또한 자료 부족의 문제를 극복하고 삶을 증언하는 미술사를 쓰기 위해 저자가 내세운 방법론 중 하나가 재일조선인미술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었다. 이른바 구술사 연구 방법은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는 극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다소 낯설지만 ‘재일조선인’의 글투와 말투로 이루어진 증언을 읽다보면, 우리는 당시의 뜨거웠던 우정과 연대의 현장으로 기꺼이 끌려 들어가게 된다.
우리 미술사, 그리고 동아시아 미술사의 공백을 메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미술가는 조양규, 전화황, 곽인식처럼 이제는 우리에게 조금은 알려진 재일작가도 있지만, 김창덕, 백령, 전철, 채준, 표세종, 성리식, 김희려, 한동휘, 박일대, 리철주, 리경조 등 대부분 낯선 이름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나 조직과 전시회를 꾸려가며 무엇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지, 미술가로서의 올곧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토론하는 모습은 여느 미술가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은 재일조선미술회가 결성(1953년)되고 그 단체 안에서 ‘재일조선인의 생활’, ‘귀국’, ‘한국의 구국 투쟁’ 등 일정한 테마 아래 협동작을 제작하고 《순회전》(1956년)을 비롯해 이념과 배경을 달리했던 민단계와 총련계 미술가가 만나 두 번의 《연립전》(1961년)을 성사했던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그들이 《일본앙데팡당전》과 《조일우호미술전》 등을 통해 일본인의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미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한편, 남과 북의 정세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던 사실을 밝힌다. 이로써 “재일조선인미술가들의 활동이 결코 자신들만의 고립된 움직임이 아니라 동시대 세계사와의 관계성 안에서 전진해 온 역사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옮긴이의 글에서) 한편 부록으로 재일조선미술회의 기관지로 7호까지 발간된 『조선미술』의 꼼꼼한 해제를 실어 재일조선인의 표현 활동을 복원함으로써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