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점의 회화’조차 차분히 볼 수 없다?
자, 여기서 질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림을 바라본 시간’과 그 밑에 붙은 ‘해설문을 읽은 시간’ 중 어느 쪽이 길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 해설문을 보고 있었다’라고 답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입니다. 혹은 ‘감상? 왠지 귀찮다……’고 느껴서 금방 책장을 넘긴 사람도 제법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미술대학을 다닐 때는 그랬습니다. 미술관을 방문할 일이 많았지만, 각각의 작품을 보는 시간은 겨우 몇 초뿐이었습니다. 곧바로 작품에 딸린 제목과 제작년도, 해설 등을 읽고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에 대한 정보를 실물과 맞춰보는 ‘확인 작업’을 위해 미술관에 갔던 것입니다. 이런 태도로는 볼 수 있을 것도 못 보고, 느낄 수 있을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차분히 감상하는 것’은 의외로 꽤 어렵습니다. 계속 보려고 해도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서는 어느새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런 식이라면 제아무리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예술 작품이 앞에 있어도 결과는 뻔할 것입니다.
‘자신만의 사물을 보는 법·생각하는 법’은 커녕 수박 겉핥기로 이해하고는 중요한 것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하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답을 발견하는 힘’에서 ‘답을 만드는 힘’으로
아이들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면서 ‘코끼리가 있어’ ‘응? 저건 거인이다’ ‘아, 새가 되었다!’ 하며 ‘나만의 답’을 계속 만들어 가죠. 교과로서 ‘미술’의 본래 목적은 이처럼 ‘나만의 답(=구름)’을 ‘만드는’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겨진 것은 수학능력이었습니다. ‘수학’은 대부분의 경우, 입시과목에 들어갑니다만, 극히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수험생에게 ‘미술’을 공부하도록 하는 학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것만으로는 큰일 날 거야……’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 배경이 된 것이 이른바 ‘VUCA 세계’라고 표현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이겠지요. VUCA란 ‘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애매함’이라는 네 가지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로, 온갖 변화의 폭과 속도와 방향이 제각각이라서 앞으로의 세계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가 변화를 겪을 때마다 그에 맞는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며 무의미한 것입니다.
여기에 재차 타격을 가하는 것이 ‘인생 100년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불투명한 세계와 오래도록 마주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노릇입니다. ‘2007년에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절반은 107세가 넘도록 살 것이다’라는 연구보고도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13세 소년 소녀가 107세가 되는 건 22세기, 2114년입니다. 그때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을까요?
물론, 어른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이것만 해두면 괜찮아!’ ‘이게 바로 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당연한 ‘답’을 이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게 되는 우리는 ‘태양을 발견하는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서 ‘자신만의 ‘구름’을 만드는 능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이것을 몸에 익히는 데는 ‘미술’이야말로 안성맞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지금 그야말로 최우선으로 배워야할 교과는 다름 아니라 ‘미술’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