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외교관이 알려주는 제재에 관한 국제정치
최근 제재라는 단어가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있다. 북한, 이란에 대한 제재에서부터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미국의 ‘반도체법’ 및 ‘인플레이션감축법’상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 자금동결이나 국제결제시스템인 SWIFT에서 러시아 금융기관 배제라는 금융제재까지. 이런 상황에서 현직 외교관이 제재에 관한 종합적인 서적을 출간했다. 현재 루마니아 주재 대사로 근무 중인 임갑수 대사는 미국과 EU 등 주요국들의 독자적인 제재를 종합적으로 다룬 『제재의 국제정치학』을 펴냈다. 저자가 2013년에 출간한 『안보리 제재의 국제정치학』이 유엔안보리 제재를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제재의 국제정치학』은 이와 같은 새로운 경향을 다루기 위해 독자제재를 다루고 있다.
이제는 독자제재다!
최근에는 ‘유엔 안보리 제재’보다는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한 ‘독자제재’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주된 이유로는 안보리 제재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5개 상임이사국 간 이견이 발생해 안보리에서 제재 결의를 채택하기가 쉽지 않고, 설령 제재 결의를 채택하더라도 제재의 범위와 수위가 약화되어 별도의 독자제재로 이를 보강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EU의 제재 부과 및 이행에서 공조와 협력이 더욱 강화되어 ‘독자제재의 소(小)다자화’ 경향이 나타났는데,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대(對)러시아제재에서는 미국과 EU가 거의 한 몸으로 움직여 사실상의 ‘제재연합’을 구성하고 있다. 독자제재 중에서도 달러화의 패권적 지위를 활용한 금융제재가 지속 강화되어 왔다. 미국이 2000년에 지정한 금융제재 대상은 912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약 9,000 여건으로 약 9배 증가했다.
소(小)다자주의 또는 복수국가 간 연합 중심으로 재편된 국제정치
국제정치 지형이 바뀌었다. 코로나 사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치면서 경제적 탈(脫)동조화(economic decoupling)와 정치적 분절화(political fragmentation)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세기가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전성기였다면 앞으로의 국제정치는 안보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간 소(小)다자주의(mini-lateralism), 복수국가 간 연합(pluri-lateral)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제재, 과연 효과 있나?’ 커지는 제재무용론
일각에서는 독자제재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저자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경우에는 독자제재가 그 틈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자제재라고 해도 제재에 참여하고 협조하는 국가가 증가할수록 사실상 다자 차원의 제재로 진화해 북한을 포함한 제재 대상국들의 제재회피 행위를 억제할 수 있고, 국제적인 정당성도 확보할 수 있어 독자제재에 대한 비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재를 통해 얻고자 했던 상대방의 행동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제재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있으나, 저자는 미국과 EU 등 주요국들의 독자제재가 계속 증가하고, 제재의 소다자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므로 제재의 효과성 여부에 대한 논쟁보다는 제재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조건에 집중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