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입은 영혼들의 사귐
이 책을 번역한 이현주 목사는 「옮긴이의 말」에서 ‘사람이 사람과 맺고 푸는 인간관계, 이것이 인생사 거의 전부’라고까지 표현한다. 한자로 사람을 뜻하는 ‘人’자는 작대기 두 개가 서로 기댄 모양인데, 서로 기대어야 설 수 있는 막대기처럼 사람 또한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 드러난 글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없이 어렵고, 때에 따라 인생의 가장 커다란 고통이 되기도 하는 인간관계에 대해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한 답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예리한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내 인생의 짝으로 맞을 것인지, 연인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부부는 서로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어떻게 여겨야 하는지, 원수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는지, 이별과 상실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 책은 ‘인간관계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세세한 노하우로 그득하다. 동시에 이 모든 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내 앞에 나투신 ‘하느님’과의 우정을 쌓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당신은 순수한 우정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것이다. 참된 친구가 되려면 영혼을 알아야 한다. 자신을 하나의 영혼으로 인식할 때 완벽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좋은 친구 되는 일에 실패한다면, 자신의 영혼을 길러서 위없이 높은 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기 확장의 법칙을 어긴 것이다. 사람은 자신과 남에게 진실한 친구가 되면서 하느님과 우정을 쌓을 수 있다.”(p.18)
우리는 인종과 성별, 국적과 연령을 넘어서 모두 육신을 입고 삶을 경험하고 있는 영혼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 영혼들 사이의 우정이다. 저자는 영혼들 사이에 진정한 우정이 생겨나 함께 거룩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서로를 극진히 섬길 때, 바로 그 우정에서 ‘위없이 높은 영의 불꽃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과 사랑은 머리와 가슴을 넘어 영靈을 향해 나아가며, 그렇게 영적으로 성숙하여 결국 한 분이신 ‘위대한 친구(the one Great Friend)’와 조우하기 위한 여정임을 기억하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있다.
이기利己를 넘어 참사랑으로
우리가 맺는 온갖 인간관계와 그 신성한 잠재성을 탐색하면서 삶의 통찰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삶의 문제들을 솔직하게 드러내주며, 명료한 해법 또한 제시해준다. 이 얇은 책에서 저자가 닳도록 강조하는 것은 나와 함께 웃었던 그 얼굴이 나에게 화를 내거나 증오를 발산한다 해도 여전히 내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할 수는 없고, 내 곁의 피조물을 사랑할 수 없다면 하느님의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설정해둔 경계를 넘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자신의 내면의식을 반영한다는 사실과, ‘남한테 하는 대로 나에게 돌아오리라’는 법칙을 기억해야 하리라.
“실천적인 긍휼과 연민을 통해 ‘다른 몸들’ 안에서 저 자신을 느낄 때, 비로소 에고는 잊고 있던 자신의 "없는 곳 없음"을 회복하게 된다. 안목이 짧은 세속인들과는 다르게, 신성한 영혼은 제 몸 안에 있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몸 안에 있는 자신을 위해서도 일한다. 당신 몸 안에 있는 당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몸 안에 있 는 당신을 위해서도 자양과 번영과 치유와 지혜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p.16)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을 자기 자신처럼 느끼며, 이웃을 섬기는 일로 스스로의 구원을 이루라고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부드럽게 권유한다. 내 곁에 아직 사람들이 있는 까닭은, 그들을 섬기고 그들과 함께 나누는 법을 배울 기회를 나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에 작지만 묵직한 매뉴얼이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