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의의는, 각 시대 사람들의 당시대를 보는 혜안, 그리고 그 혜안을 통해서 보여지는 당시대의 문제를 과감히 지적하고 또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여 해결토록 하려는 시대적 사명감 등을 파악하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고전을 통해서 각 시대별 인물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이해하고 대처해 왔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우리도 또한 자연스레 그러한 혜안을 갖게 되고 자신의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서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이러한 시각과는 그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이처럼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고전은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많이 있으며 《북학의北學議》도 바로 그런 고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고전과 달리 《북학의》가 갖는 중요한 의의는 바로 당시의 실생활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그 시대 일반인들의 생활 모습을 명확히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앞에서 말한 고전을 읽는 의의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적인 딱딱한 고전과는 달리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은 주변 국가로부터의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국난 극복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 중심의 역사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가장 위대한 민족인 양 생각하게 되어 맹목적으로 타민족을 증오 내지 경시하는 그릇된 역사관이 일반적으로 존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로써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개방화 시대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따돌림 당하기가 십상이다.
이제 《북학의》 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한번 되씹어 보고 우리 민족이 살아온 역사적 과정이 얼마나 모순되고 불평부당하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면 이러한 느낌을 가져야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학의》는 박제가가 진주사陳奏使의 일원으로서 청나라에 가서 몇 개월간 머무르면서 느낀 바를 청나라와 조선 사회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중국의 것을 거울삼아 우리나라의 모순된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자신의 논리를 〈내외편內外篇〉으로 정리하여 엮은 책이다. 그러나 당시의 고루한 사회 분위기에서 이 책의 주장이 너무 혁신적이었고, 또는 너무 중국병에 걸려 있다고 혹평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저술한 후에는 공개되지 않고 몇몇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나누어 보았다.
그러다가 정조 22년 농서農書를 구하는 윤음綸音이 내려지자 이때를 기해서 상소上疏 형식으로 바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북학의》의 〈내외편〉과 상소한 〈진북학의소進北學議疏〉와는 그 형식과 내용이 다르다. 왜냐하면 〈진북학의소〉는 주변인물들과 상의하여 보다 합리적인 내용으로 재편하여 올린데다가, 내외편 분량의 삼분의 일가량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대략의 의도는 알 수 있으나 박제가 자신의 전반적인 의도를 이해하는 데에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내외편〉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여기에는 총서시리즈의 특성상 전량을 다 수록하지 못하고 극히 소량의 부분을 삭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 다만 전체적인 구성상 절대로 하자가 없는 범위에서 삭제를 했기 때문에 박제가의 사상이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한 자료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 기존에 번역 출판된 《북학의》가 여러 권 있지만 대개가 〈진북학의소〉만을 번역한 것이다. 〈내외편〉과 〈진북학의소〉를 모두 번역한 것으로는 1971년 을유문고에서 발행한 《북학의》와 1994년에 한길사가 출판한 《북학의》가 있는데, 동일한 저자이므로 다른 점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이들 책은 내용이 충실히 번역되어 믿을 만하나 한문투의 말이 너무 많아 요즘 우리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도 많고 읽어 가는 데 지루함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북학의》에서 의도하는 바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 감각에 맞게 새롭게 의역을 가해 누구나 읽기 쉽도록 구성함으로써, 부담없이 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하였다.
끝으로 바라고 싶은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이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항상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여, 우리가 좀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이 책에서 얻기를 바란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