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빛도 사라질 것이다.”
『멜랑콜리아 I』은 빛을 사랑했지만 외롭고 그늘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예술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1853년 늦가을, 그는 위대한 풍경화가가 되고자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한스 구데가 교수로 재직한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를 찾는다. 1853년 가을날 오후, 멋진 보랏빛 코듀로이 양복을 차려입고 자신의 운명을 결단해 줄 구데 선생을 기다리던 헤르테르비그는 돌연 착란에 사로잡힌다. “혹시 나더러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예술적 재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하면 어떡해야 하나? 아니다, 나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없다. 오직 나만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 낼 수 있는 예술가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불안과 우울, 편집증적 망상 속으로 깊이 침잠해 가던 헤르테르비그의 눈앞에 또 다른 운명의 서광이 비친다. 바로 자기가 하숙하는 빙켈만 집안의 딸, 헬레네에게 완전히 매료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헤르테르비그의 두 가지 운명은 어둑한 영혼 속에 까마득히 잠들어 있던 파국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멜랑콜리아 II』는 50여 년에 이르는 긴 세월을 건너뛰어 1902년(라스 헤르테르비그가 사망한 해이다.), 노르웨이 서남단에 위치한 스타방에르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2부는 돌연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누이이자 치매로 인해 고통받는, 허구적 인물 ‘올리네’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그는 이미 대부분의 가족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으로,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위태로운 촛불처럼 한없이 명멸하는 기억 속을 방황하며 라스의 모습, 음성, 그 모든 흔적을 헛되이 뒤쫓는다. 올리네는 과연 라스를 되찾을 수 있을까? 끊길 듯 가느다란, 그러나 슬프도록 찬연한 한 줄기 빛이 여전히 소녀를 간직한 그 나이 든 얼굴에 가닿는다.
예술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에 대하여
라스 헤르테르비그(Lars Hertervig, 1830~1902)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험준한 화성암 산악과 빙하 침식 지대, 호수와 피오르, 장엄한 프레이케스톨렌(다이빙대처럼 공중으로 죽 비어져 나온 암석 지형) 등이 첩첩이 쌓인 라이팔케 지방의 풍경을 그려 낸 대표적인 노르웨이 화가다. 헤르테르비그는 노르웨이 서부, 척박하고 외딴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가난한 퀘이커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미술에 관심을 보인 그는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학교의 교수 한스 구데에게 사사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
1854년 어느 날, 동료 학생들의 잔인한 장난에 크게 상심한 헤르테르비그는 모든 활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급기야 1856년,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그렇게 그는 사망하기까지 30여 년 동안 가난하고 고립된 환경 속에 갇힌 채, 유화가 아닌 수채화와 구아슈화, 심지어 호밀 반죽을 사용해서 가까스로 작품 활동을 이어 간다. 헤스테르비그의 예술 작품은 1914년, 그가 죽은 지 12년 뒤에야 비로소 세상의 빛을 받는다.
오늘날 그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풍경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욘 포세는 자신의 작품 『멜랑콜리아 I-II』를 통해 우울이라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추구한 그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펴낸 『멜랑콜리아 I-II』의 표지 그림 역시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작품으로, 그의 고향 풍경인 보르그외이섬이다. 정신 병원에 머물며 가난한 생활에 갇혀 있을 때 완성된 이 작품은 화가의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보여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