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본생담에 주목해야 할까?
우리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비둘기를 살리기 위해 허벅지 살을 도려내 준 부처님, 자신이 구해준 궁수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오히려 그를 위해 살아날 길을 알려주는 황금 사슴이었을 적의 부처님 등 코끼리, 원숭이, 백조, 왕, 궁수 등으로 태어났던 다양한 모습의 전생 이야기가 있다. 대부분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해주는 내용이다. 얼핏 ‘본생담에서 강조하는 것은 희생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 부처님의 본생담이 중요한 걸까? 왜 본생담에 주목해야 할까?
본생담은 부처님이 부처가 되기 이전 과거세의 선행 이야기다. 현재의 생을 일으킨 과거세의 끝없는 선행 덕분에 선업이 쌓이고 쌓여서 고타마 싯다르타로 태어나 부처가 된 것이다. 그냥 부처가 된 것이 아닌 반복적인 생과 사의 윤회 속에서 전생의 자기 희생의 복덕 덕분에 부처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의 현세(現世)의 모습은 전생의 결과이고, 내세(來世)의 모습은 현세의 결과인 것이다. 본생담은 무엇보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난행(難行: 어려운 행)을 능행(能行: 능히 행함)하는 보살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행동을 보여주면서 악연(惡緣)을 선연(善緣)으로 바꾸어 더 이상 업을 짓지 않게 이끌어 준다.
본생담을 읽다 보면 나와는 상관없는 옛날 옛적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마음 밑바닥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된다. 첫째 부인에게 질투하는 둘째 부인, 그 질투로 눈이 멀어 결국 남편을 죽음에 몰기까지 하는 이야기, 한쪽 눈을 내어주고도 모자라 나머지 한쪽 눈까지 내어주고,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자 후회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
각전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본생담에 실린 작품들의 세계관은 불교 수행에서 기초가 되는 심성과 성품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기초가 없이 신행 활동을 하거나 수행 정진한다는 것은 1층 없이 2층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중략)
어떤 위대한 가르침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총명한 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신의 마음 내지 심성(心性)이 변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본생담을 순수한 마음으로 여과 없이 읽는다면 누구나 크든 작든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그 변화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결과에 이를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더욱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누구나 하기 어려운 행동을 능히 행하고,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전통적인 프레임이 구닥다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악에 대항하며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악(惡)이 스스로 느껴 선(善)이 될 때까지, 내 몸이 사라질 때까지 악을 끌어안아 폭풍우가 아닌 따스한 햇살로 포근히 감싸 안는 것, 이런 점이 본생담이 일깨우는 진정한 의미이다. 맞서 싸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싸우지 않으면서 은근한 따스함을 전하며 악인이 스스로 뉘우칠 때까지 시간을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의 마음인 것이다.
각전 스님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머물지 않고 진일보(進一步)하여 정진(精進) 여가(餘暇)에 이 고전(古典) 중의 고전인 부처님의 본생담을 바래고 다 식어버린 잿더미 속에서 발췌해서 우리의 불심(佛心)을 심어주고 일깨워주는 법공양으로 올리니, 이 불사(佛事)의 크나큰 공덕(功德)을 말로 다할 수 없다.”
-불국사 승가원장 덕민 스님의 추천사 중-
덕민 스님의 추천사처럼 각전 스님의 《자타카로 읽는 불교 1》을 통해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나도 모르는 불심을 깨워 난행(難行: 어려운 행)을 능행(能行: 능히 행함)하여 자신의 한계를 깨뜨리면 어떨까 싶다.
∵ 댓글 2022.4.19.
본생담의 연재가 내 마음 밑바닥을 다 보게 하네요. 처음 우연찮게 절에 가니 스님들께서 보시도 많이 하고 공덕도 많이 지으라고 법문하시길래, 보시하면서 복 많이 달라고 계속 빌었고, 빌면 다 주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부터 ‘이것이 뭐지?’ 생각하면서 ‘보시한다는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내 모습으로 하자’는 생각으로 하니 마음도 편안하고 세상도 온전히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주상보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조금 보시하면서 복은 우주 법계만큼 많이 달라고만 할 때는 쫓기는 것 같은 입장이었으나, 나름 순리대로 따르고 있는 지금은 잔잔한 물처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스님 글을 계속 읽으면서 조금씩 나의 본모습을 본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