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내가 쓰는 소설은 반드시 끝을 맞이하고
좋게든 나쁘게든 결말이 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욕지거리』는 제167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으로 오른 작품이다. 작가 야마시타 히로카는 2015년 『돌(ドール)』로 등단하여 집필 활동을 이어왔고, 이 작품으로 아쿠타카와상 후보작에 처음 선정되었다. 제167회 아쿠타가와상은 처음으로 다섯 편의 후보작이 전부 여성 작가의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고, 그중 『욕지거리』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호평을 받았다.
▣ 지긋지긋한 현실 속 나를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 ‘욕지거리’
유메는 90세 고령의 할머니와 엄마 키이짱과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는 아빠 유이치의 어머니로, 유메에게는 친할머니인 셈이다. 바람이 나 다른 살림을 차렸으면서도, 전 아내인 키이짱에게 엄마를 맡기고 떠난 것과 다름이 없다. 아빠 유이치의 답 없는 행동으로 인해 기이한 형태의 가족이 되어버린 세 사람은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빠듯하게 살아간다. 유메네 집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 키이짱은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자 한다. 그런 친절과 배려를 아는 할머니는 더욱 안하무인, 제멋대로 굴며 키이짱과 유메를 괴롭게 한다. 유메는 키이짱을 지키기 위해 할머니와 아빠에 맞서서 욕지거리를 한다. 키이짱을 따라 할머니를 돌보고, 생활비를 제때 주지 않는 아빠를 쫓아다녀야만 한다. 꿈 많은 유메는 또래의 친구들만큼만 자신이 평범하기를 바라지만, 유메가 지고 있는 짐은 유메의 젊음과 꿈을 갉아먹을 만큼 버겁고 무겁기만 하다.
욕지거리는 유메가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었다. 유메는 불합리한 상황 속에 놓일 때마다 상대에게 욕을 내뱉는다. 키이짱에 대한 고마움은 일절 알지 못하고 아들만 찾는 할머니와 지독하게도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고집하는 키이짱, 여전히 이 집 식구들은 뒷전인 유이치,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주는 남자친구까지. 유메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따지고 욕을 한다.
▣ 꺼내면 꺼낼수록 아프고 내뱉으면 내뱉을수록 초라한, ‘사랑’
그러나 유메는 욕을 하면 할수록 비참해지고 상처받는 것이 사실은 스스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가족을 욕하는 일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왜 자신이 그들을 욕하는지, 이 욕지거리의 이면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고 있다. 유메의 기억 속에는 그들에게 받은, 단 한 번이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있지만, 그만큼 그들을 사랑했던 순간도 많을 것이다. 아프고 나쁜 것은 아프다고, 나쁘다고 말하면 그뿐이지만 사랑은 어쩐지 꺼내면 꺼낼수록 아프고 내뱉으면 내뱉을수록 상처가 된다. 소설은 유메가 쓰는 대로 결말이 바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유메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간절함이 소설가를 꿈꾸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욕지거리』는 구원이 없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유메를 헤아려주는 이 하나도 없이, 유메만이 다른 이들을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다. 헤아리는 자는 우둔한 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품게 되어서, 다른 이들보다 몇 배로 아프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아픔과 고통에 구원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유메는 계속해서 삶을 살아내고 쓰고자 애쓴다. 내뱉어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유메는 지지 않고 내뱉는다. 욕지거리 나는 현실이라고 해도 유메는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는다. 키이짱도, 살아간다는 일도, 소설가의 꿈도. 유메의 구원은 현실도 꿈도 무엇도 아닌, 유메 자기 자신이다. 청춘을 새카맣게 태워 이어가는 현실 속에서 오로지 유메만이 선명히 존재하고 있다.
▣ 나의 유일한 구원, ‘자기 자신’
그런 의미에서 『욕지거리』는 우리에게 지독한 현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지독한 현실에서 보지 못하고 있는 구원에 대해 다시 한번 알려주는 작품이다. 너무나 거리가 가까워, 내가 가진 유일한 구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는 ‘나’라는 존재. 이 지독한 현실에서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나’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누군가를 원망하는 일도, 무언가를 꿈꾸는 일도, 현실에서 도망가는 일도, 그 현실을 결국엔 인정하는 일도, 그리하여 살아가는 일 전부, 내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들이 된다. 『욕지거리』는 욕지거리를 뱉을수록 상처받는 것은 나이지만, 해결되는 것 없이 반복되는 현실뿐이지만, 그런 나를 감싸 안고 함께 살아내는 일을 해주는 것도 ‘나’라는 사실을, 나의 존재를 마음에 다시 한번 새겨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