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까지 형이상학을
잘못 알아 왔다!”
-인간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하이데거가 다시 말하는 형이상학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은 마르틴 하이데거가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이던 시절, 1935년 여름학기에 강의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특히 2023년 그린비에서 출간되는 이 책은 1994년 국내 첫 출간 이후 오랫동안 절판 상태였던 것을 복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번 복간본에서는 특별히 페트라 예거판 『하이데거 전집 제40권』의 소제목과 원서의 해당 부분을 본문에 쪽수 표시하였으며, 하이데거 전공·연구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부록」과 「발행자의 후기」의 독일어 원문을 추가로 실었다.
하이데거 형이상학의 핵심을 요약해 놓았다고 일컬어지는 이 책은 그가 생각하는 형이상학의 근본물음을 점진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 근본물음이란 바로, ‘왜 있는 것은 도대체 있고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지(無) 않는가?’이다.
왜 있는 것은 도대체 있고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하이데거는 위 질문을 ‘모든 문제들의 첫 번째’라고 말했다. 형이상학적 질문이 인간의 존재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하이데거는 서구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비판하였다. 전통 형이상학이 실증주의라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법칙이나 원리를 도출하고 이를 현실과 존재를 이해하는 데에 사용했다면,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러한 객관적인 분석으로는 결코 충분히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의 실제경험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직관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에 ‘왜 있는 것은 도대체 있고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이 질문을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을 하는 것이라고 알아들었다. 우리들이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이 질문의 길을 향해 떠난다면, 이것은 우선 우리들이 우리들에게 익숙해진 모든 있는 것들의 영역 안에 머무르기를 단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일상적 풍조를 떠나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익숙해진 것 ,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 정돈된 정상적인 것을 벗어나 질문하는 것이다. _본문 38쪽 중에서
우리가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는가?
존재와 존재자는 구별되어야 한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이며 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대의 형이상학은 존재자를 존재하게 하는 본질이 아니라 단지 ‘존재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왔을 뿐이었다. 그는 이것이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의 왜곡이라 주장하며, 존재는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방식이고 존재자는 존재의 방식에 따라 존재한다고 구분하였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자의 근본은 존재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보다 더 깊은 그 무엇, 존재 자체에 있으며, 존재는 무에 의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일상에 매여 있는 존재자가 무와 대면하는 순간, 존재자는 스산한 느낌, 편안하지 않은 느낌을 갖게 되지만, 이를 통해 존재자는 존재와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질문할 수 있다라는 것은 기다릴 수 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그것이 한평생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서양철학의 역사 전체를 다루고 있는 이 『형이상학 입문』에서 하이데거는, 동양의 ‘역(易)의 존재지혜’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사색했던 라이프니츠의 질문, “왜 있는 것은 도대체 있고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를 다시 불러오며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있음’(존재, 存在)을 ‘있음’과 마주 서 있는 것으로, 있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서양철학이 사색해 온 네 개의 영역인 ‘있음과 변화됨’(Werden), ‘있음과 가상’(Schein), ‘있음과 당위’(Sollen) 그리고 ‘있음과 생각’(Denken)의 가름을 통해서 역시 서양 형이상학의 전(全)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은 형이상학이 오늘날에 이르러 과학 기계·기술문명 그리고 허무주의와 더불어 그 종말에 이르고 있다고 여긴다. 이 종말에 대해 “철학의 종말은 학문적-기술적 세계와 이 세계에 적합한 사회 질서를 정리 정돈하고 언제든지 조종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승리의 함성으로서 스스로를 나타내 보여 준다. 철학의 종말은 서양적-유럽적 사유 속에서 근거 지어진 세계문명의 시작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나 철학이 학문들로 펼쳐져 간다는 의미에서 철학의 종말은 이미 철학의 사유가 그 안에 정립되어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완전히 실현되었음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앞에서) 특징지은 마지막 가능성 (즉 철학이 기술화된 학문들로 용해되는 것) 이외에 최초의 가능성이 사유에 (주어져) 있는가, 즉 그것으로부터 철학의 사유가 물론 출발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이 철학으로서 결코 고유하게 경험할 수도 없고 떠맡을 수도 없는 그런 최초의 가능성이 사유에 (주어져) 있는가? 만일 이러한 것이 사실일 수 있다면, 그때는 어떤 하나의 과제가 사유에게는 유보되어 있어야만 하리라….”
하이데거가 말하는 서양철학을 넘어서서 사유해야 하는 또 다른 어떤 사유의 최초의 가능성, 어떤 유보되어 있는 ‘사유의 과제’를 준비하고 사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이 책은 우리에게 좋은 길 안내자가 되어 준다. 이미 세계문명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고 사색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이데거는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 결코 완전한 이해에 이를 수 없음을 인정하되,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 존재의 의미는 질문을 시작하는 일에서부터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