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에서 유교적 계몽과정은 무엇보다 관방학적 복지국가론의 탄생이 두드러진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케네의 절대적 중농주의를 거쳐 아담 스미스의 경향적 중농주의에 기초한 근대적 자유시장이론이 완성되었다면, 독일에서는 근대적 복지국가론(양호국가론)과 관방학적 관료행정국가론이 완성되었다. ‘자유시장에 기초한 관료적 복지국가’는 20세기 서구국가의 이상적 모델이었고, 지금은 전 세계 차원의 이상적 국가모델로 자리 잡았다. ‘근대국가’란 한편으로 어떤 형태로의 ‘민주’든, 따라서 서양식 의회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도시소국을 뛰어넘는 광역국가에서 탈脫신분적 자유평등에 기초한 인민의 주권이 관철되는 ‘광역의 국민국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자유시장에 기초한 관료적 복지국가’다. ‘민주·시장·복지의 3자 결합’을 근간으로 한 근대국가의 사회경제적 측면에 해당하는 자유시장론과 복지국가론은 둘 다 공맹의 양민養民·교민敎民론과 중국의 각종 사회적 약자구휼제도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광역 민주국가와 자유시장 이론의 발전은 〈17-18세기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과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에서 존 밀턴, 로크, 섀프츠베리, 흄, 아담 스미스, 벨, 볼테르, 케네, 루소, 다르장송 등을 다루면서 상론했다. 여기서는 독일·오스트리아와 관련해서 복지국가론과 관료행정론(관방학)의 발전을 상세히 다루고, 스위스와 관련해서는 중국적 농·상 양본주의 이론의 도입 및 그 실천적 적용과 성공 사례를 분석한다.
독일에서 복지국가론과 관료행정론(관방학)은 크리스티안 볼프와 요한 유스티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전에 푸펜도르프·라이프니츠의 공자·중국연구가 있었는가 하면, 공맹의 덕치국가·인정론에 입각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의 계몽군주론이 마키아벨리의 탈脫도덕적·정략적 국가론을 분쇄함으로써 크리스티안 볼프와 요한 유스티의 중국식 관방학과 양호국가론으로 가는 길을 터주었다. 또 귀족신분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능력주의 관료행정을 강화하는 오스트리아 요셉 2세의 중국지향적 국가개혁이 이를 측면에서 뒷받침해주었다. 독일권의 이 사상적·역사적 변화를 규명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푸펜도르프·라이프니츠·볼프·프리드리히 2세·유스티의 유교적 계몽철학과 요셉 2세의 국가개혁론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그러나 농·상農商 양본주의와 자유시장에 입각한 근대적 부국화富國化에 세계 최초로 성공한 나라는 뜻밖에도 스위스였다. 스위스가 가장 먼저 ‘리틀 차이나’로 떠오르게 되는 이런 선구적 근대국가 건설에는 스위스 계몽철학자 알브레히트 폰 할러의 정치소설 〈우송 황제〉 및 중국 상공업제도를 모방한 그의 농·상 양본주의 경제철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할러의 계몽철학과 스위스의 부국화 과정을 아울러 상론한다.
따라서 이 책의 주요 논의대상은 독일에서 공맹의 양민·교민론과 중국의 각종 구휼제도 및 관료제를 모델로 한 중국식 복지국가와 관료체제의 이론적 탄생, 스위스에서의 농·상 양본주의의 구현과 최초의 자유시장국가의 탄생이다. 그리고 계몽사상가들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초점은 푸펜도르프·라이프니츠·볼프·프리드리히 2세·유스티·헤겔·요셉 2세·알브레히트 폰 할러 등에 맞춰진다.
필자로서는 이 책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가 다른 자매편 저작들과 함께 열독되어 유럽제국의 근대화 과정이 실은 ‘서구문명의 유교화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의심할 바 없는 명제로 제대로 알려지고 한국과 극동제국의 문명적·역사적 자존심이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