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문제는 ‘나’와 ‘나 아닌 것’을 가르는 경계에서 비롯된다. 선 하나를 그을 때마다 대립되는 두 영역이 생긴다. 우리는 그중 하나에 자신을 동일시한다. 나는 이것이지 저것이 아니며, 이쪽 편이지 저쪽 편은 아니라는 둥. 그런 식으로 수많은 경계를 설정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이 방식에는 위험이 따른다. 모든 ‘경계선’은 잠재적인 ‘전선(戰線)’이기에.*
장애물이 가득한 미로, 견고한 벽, 요새는 경계선의 집합이며 인위의 산물이다. 이러다가 평생 미로에서 헤매면서 사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두려워할 필요 없다. 스스로 만든 경계를 직시하는 순간 삶은 난제가 아니게 된다. "나"와 "타자"의 경직된 구분을 넘어 낯선 것에 마음을 연다면, 삶은 기꺼이 즐길 만한 모험이 된다. 전시 《인간적인 것의 미로》는 우리가 만들어낸 수많은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인위와 야생, 동물성과 식물성 - 이 모든 대립쌍은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한다. 전시는 이러한 이중성을 인식하고 하나로 통합하면서, 인간이 스스로 부과한 삶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탐구한다.
전시는 세 가지 공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공간은 ‘미로의 방’이다. 〈우당탕퉁탕〉에서 연장된 미로와 공중 요새 〈난공불락의 성〉, 수십 개의 화판을 쌓아 올린 벽 〈흔적의 망〉이 관객을 맞이한다. 그림 속 생명체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이동하며 공간의 구조에 반응한다. 그림 한쪽에는 생명체의 삶과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그려져 있다. 이는 망각과 혼돈, 무의미에 맞서는 인간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로버트 맥팔레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고 설명하는데,** ‘미로의 방’ 역시 상징적인 ‘언더랜드’로 볼 수 있다. 어두컴컴한 지하 동굴에 찍힌 손자국처럼, 미로와 벽에 새겨진 생명체의 흔적은 복잡미묘한 삶의 드라마를 고스란히 전한다.
두 번째 공간은 ‘구멍의 방’이다. 이곳의 시간은 비상식적으로 흘러간다. 특정한 방향성이 없고, 순행과 역행을 반복하며, 불규칙한 지연이 발생한다. 공간은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팽창하거나 수축하며 희미하게 요동친다. 〈변이지역〉과 〈안개구멍〉에서 생명체들이 넘나드는 구멍은, 채광을 활용하여 빛과 어둠, 구멍의 안팎이 지닌 양면성을 부각한 설치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공간은 앞의 두 공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로서, 구멍을 통해 각기 다른 우주로 빠져나온 생명체들을 보여준다. 각 생명체는 틀에 박힌 공간에서 균일한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우주에서 저마다 고유 시간을 누리며 산다. (전시 서문 / 홍예지 큐레이터)
* 켄 윌버, 『무경계』, 김철수 옮김, 정신세계사, 2012, p.38.
** 로버트 맥팔레인, 『언더랜드』, 조은영 옮김, 소소의책, 2020,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