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자생철학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국가가 적지 않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원인은 자생철학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으냐의 차이인 것 같다. 자생철학이 없으면 국민의 교양으로서의 철학이 부재하고, 철학이 없으면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독자적인 사유체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나라의 문화전통으로서 일어난 철학이 없으면 그 부를 지탱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론이라고 알고 있는 철학은 영국의 철학이다. 관념론이라고 알고 있는 철학은 독일의 철학이다. 합리론이라고 알고 있는 철학은 프랑스의 철학이다. 실용주의라고 알고 있는 철학은 미국의 철학이다. 이들 국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보편성에 도달한 문화능력이 있기 때문에 근대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서구의 철학을 그 나라의 국민철학, 혹은 국가철학이라고 이해하고 있기보다는 처음부터 보편철학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이들 철학이 보편성에 도달한, 세계인으로 하여금 믿고 따를 수 있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철학이다. 그러나 그 철학의 발생 과정을 보면 그 나라의 사유체계와 존재방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하나의 마을처럼 가까워졌지만, 그럴수록 자신만의 고유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철학적 시민권을 주장할 수 있고, 선진국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그 나라의 고유한 철학이 없으면 결국 정신적 사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고 하면 종래 동서철학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더불어 그 틈새시장을 뚫고 우리말인 한글에 의해 개념화되고, 체계화된 한글철학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서양철학, 중국철학을 배우고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은 문화적 사대주의다. 외래철학을 잘 한다고 우리의 고유철학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외래철학에 빠지면 빠질수록 자신의 혼을 잃어버리고 헤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훌륭한 외래 철학일수록 정치한 내용은 물론이고, 체계화와 설득력의 면에서 우리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는 오랜 철학적 전통과 함께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나마 선진국을 구가하면서 제국주의를 행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자국의 철학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철학자 군을 자랑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아직 그러한 철학자와 철학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도리어 고대철학으로서 천부경(天符經)의 천지인(天地人)·정기신(精氣神) 사상을 지니고 있지만 근대철학으로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조선조 성리학(性理學)만 하더라고 중국 송(宋)나라 주자(朱子)의 철학이다. 우리는 주자의 철학을 마치 우리의 철학인 양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이것은 부성부재(父性不在)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주자철학을 퇴계(退溪)철학이라고 하면서 국내외에 떠들고 다녔다. 지구촌이 세계화가 된 오늘날, 주자의 성리학을 한국의 철학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원효(元曉)의 화쟁(和諍)사상은 그래도 좀 낫다. 중관(中觀)사상을 비롯해서 유식(有識)사상 등 불교사상과 철학을 죄다 모아 화쟁 시키면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정리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메타(meta)철학으로서 화쟁사상을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원효의 화쟁사상이나 퇴계의 경(敬)철학을 우리의 사상으로 팔아먹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시대정신을 담은 철학을 생산하지 못하고, 그 과거의 흔적들만 우상처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부재(不在)를 현존(現存)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문턱에 있는데 철학은 항상 서양철학을 들먹이고, 아니면 중국 고전철학을 끄집어내서 철학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동서양의 철학적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야 철학적 사유능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철학공부만 한다고 철학이 저절로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철학을 하려면 자신이 살고 있는 땅(나라)의 전통을 바탕으로 스스로 사유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남의 철학으로 자신의 철학을 대신하는 일은 자신의 혼을 빼버리는 일이다. 철학하는 것은 철학공부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남의 철학을 잘 알고 평생 그것을 신주 모시듯 하면 도리어 자기철학을 할 수 없게 된다. 남의 철학에 완전히 세뇌가 되면 자기철학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철학을 우상화·종교화하는 일이다.
한 나라의 철학은 그 나라의 언어로 구성되는 것이 당연하다. 남의 나라 언어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문화교류와 소통을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독자적인 철학을 수립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한글로 철학하는 자가 없었다. 한글철학의 걸음마를 떼는 기분으로 이 책을 엮었다. 한글로도 얼마든지 고매한 철학적 개념과 체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한글철학』의 한글철학은 한글의 제자원리를 설명한 책이 아니라 ‘한글로 쓰인 철학’이라는 의미이다. 이 책에는 〈알(알다)-나(나다)-스스로(살다)-하나(되다)〉의 큰 이론체계와 함께 삶의 존재방식에서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육하원칙(六何原則)을 ‘알’의 변형으로 설명하는 탁견을 접할 수 있다. 〈알(생명)-얼(정신)-올(시간)-울(공간)-을(목적)-일(놀, 놀일)〉이라는 현상학적인 이론체계가 그것이다.
철학에서 ‘나’는 키워드이다. ‘나(I)’가 없으면 철학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남-님-놈-너〉라는 명칭과 호칭 뒤에 숨은 철학적 의미와 상관관계를 처음으로 탐색했다. ‘ㄴ’은 플러스 홀소리와 닿소리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나’의 변형들은 한글 속에 숨어있는 의미체계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 점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와 ‘하나(큰 나)’의 상관관계, 그리고 ‘하나’ 플러스 ‘님’의 의미복합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동양의 철학자답게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대신할 현대판 팔조목(八條目)으로서 한글발음으로 ‘자신’의 변형으로서 〈자신(自身)-자신(自信)-자신(自新)-자신(自神)-검소(儉素)-겸손(謙遜)-자유(自由)-창의(創意)〉를 제안해보았다.
‘재미있는 한글철학’은 필자가 『무예 자체, 신체 자체를 위한- 신체적 존재론』(살림출판사, 2020)에 소개된 것을 가필하고 정정하여 증보한 것이다. 이 책에 포함된 글 가운데 ‘한민족 미학의 원형’은 30년 전에 저술한 『한국문화와 예술인류학』(미래문화사, 1990)에 실린 것을 다시 수정·보완하여 소개한 것이다. 순우리말인 ‘맛, 멋, 말, (마음-몸), 마당, 마을’이라는 여섯 단어로 한국문화의 의식주(맛, 멋)를 비롯한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소개하고, 그리고 공간과 공동체를 의미하는 마당과 마을이라는 단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한국문화의 원형으로 우리말 철학의 길잡이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한 나라의 철학이 자신의 말로 철학을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데도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많다. 한국도 그러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옛날에는 한자말이 아니면 철학을 할 수도 없었고, 오늘날은 영어를 비롯한 라틴어 계통의 말이 아니면 철학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의 철학자들은 살고 있다. 남의 나라 말로 철학을 하는데 자신의 정체성이나 혼(魂)을 지킬 수가 있을까. 남의 말로 생각을 하면 과연 그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글로 ‘쓰다’라는 말이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쓰다’이고, 사물을 이용하는 것도 ‘쓰다’이다. 왜 둘은 같은 ‘쓰다’가 되었을까. 아마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똑같이 사물을 이용하려는 의미였던 것 같다.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이 ‘말을 하는 것’을 말씀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씀’에도 이미 쓰임의 의미가 들어있다.
‘말씨’라는 말이 있다. 말에도 ‘씨’가 있는 것일까. ‘솜씨’라는 말이 있다. 손놀림에도 ‘씨’가 있는 것일까. ‘말솜씨’라는 말도 있다. 인간은 자연과 하나님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아무튼 말과 손의 피드백, 머리와 손의 상호작용은 인간문명을 일으킨 원동력이다. 우리말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철학을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이 책은 〈알(알다)-나(나다)-스스로(살다)-하나(되다)-님(존경)-남(이용)〉의 ‘알(생명)의 구조’를 말하고 있다. 또 〈알(물질)-얼(정신)-올(시간)-울(공간)-을(목적)-일(놀, 놀일)〉 등 ‘한글 육하(六何)원칙’을 소개하고 있다. 〈나-너-남-님-놈〉으로 ‘나’를 둘러싼 호칭의 변형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 단어들은 서로 치환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맛-멋-말-(마음과 몸)-마당-마을〉 등 ‘마(진실)의 변형’을 통해 한국인의 미의식을 말하고 있다. 총 28개 단어, 철학소(素)로 한글철학을 완성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28개 단어로 한국인의 삶의 철학과 미학을 통틀어 말하고 있다. 28개 개념으로 한국인의 철학을 구성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집단무의식 속에 숨어서 전해 내려온 이 단어를 발견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온몸으로 뿌듯하게 자부심을 갖는다. 아무쪼록 이 책이 한글로 철학을 하는 연구풍토의 조성과 자생철학 정립의 출발이 되기를 기원한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580년 만에 순우리말철학, 한글철학을 세상에 내놓으니 마치 한민족에게 다시 얼을 되찾아준 기분임을 어쩔 수 없다. 한글을 사용하는 민족이 세계의 중심국이 될 것을 기원해본다. 한글은 세계의 원초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글 큐빅을 도안해준 건축가인 큰아들 박준석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선뜻 출판해주신 신세림출판사 이혜숙 대표와 이시환시인, 편집교정 팀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2023년 8월 15일 心中 박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