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래된 사랑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한 영혼이 어둠에서 깨어나 빛으로 가는 이야기, 잃어버린 반쪽을 내 안에 통합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 신비로운 여정이 얼마나 눈부신지 압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프시케입니다.
프시케는 에로스의 정체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꿈 같은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나 낙원에서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언니들의 꼬드김은 그렇다 치고, 프시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에로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연인 관계를 이어 간다는 것은 기만적인 일이었습니다. 진실을 알기로 결심한 프시케는 등불과 칼을 준비합니다. 그러곤 밤에 홀로 깨어나, 잠든 에로스의 얼굴 위에 빛을 드리웁니다.
이때 등불은 상대방을 비추면서 자신을 비춥니다. 이 작지만 분명한 빛은 타인과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를 동시에 일깨웁니다. 등불은 프시케의 내면에 잠재된 자기 인식의 힘입니다. 한편, 칼은 분별력과 판단력을 상징합니다. 사태의 본질 혹은 관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으로서, 본질을 가리는 군더더기는 과감히 베어 내고 도려냅니다. 칼은 프시케의 앞날에 펼쳐질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무엇보다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사람은 단절과 분리를 겪습니다. 이별은 불가피합니다. 쥐고 있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습니다. 과거의 낡은 패턴은 부서지고, 한 번도 자각하지 못한 내면의 힘을 일깨워야 합니다. 프시케가 에로스와 다시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참 나’로 돌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저는 미술비평가, 큐레이터로서 한 작가와 만나는 일이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로, 저와 인연이 닿는 작가들은 모두 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에로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제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에로스를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눈을 여는 동안, 신기하게도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회피하고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나 합리화로 굳어진 자신에 대한 관념(동시에 세상에 대한 고정 관념), 무의식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깊이 해석하며 협업하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 타인을 경유한 자기 이해를 경험하는 일이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성숙한 파트너로서 함께하는 일입니다. 테스트를 통과한 프시케가 에로스와 다시 만나서 낳은 아이의 이름이 ‘기쁨’인 것처럼, 작가와 팀을 이루어 만들어 내는 창작물은 순도 높은 기쁨입니다. 이해의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불가피한 것을 아는 만큼, 진실로 그렇게 느낍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비평과 전시 기획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긴밀히 대화하며 서로를 비춰 줄,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기다립니다.
평론집 『사랑을 볼 수 있다면』은 오늘날의 프시케(비평가)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에로스(작가)와 자기 자신을 탐구한 기록입니다. 인식의 등불을 켜고 판단의 칼날을 벼리며, 타인과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입니다. 2019년 겨울부터 2023년 여름까지 쓴 글을 골라 엮었습니다.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첫 평론집을 냅니다. 이 여정의 시작점이 된, 그리운 성조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2023년 가을
홍예지
-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