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시와 음악으로 맺어진 우정
지난 가을, 〈Cross Finger〉로 시작한 작업이 올해 5월 〈구름 그림자〉까지 총 열 곡으로
끝이 났다. 이 노래들은 막연한 감정이나 만들어낸 상상이 아닌, 일상에서 매일
느끼고 겪는 이야기들이다. 삶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응시가 공존한다.
각 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다양한 양식과 기법을 사용하였다.
나뭇가지에 앉은 잔설을 보며 옛 약속을 떠올리는 내용의 〈Cross Finger〉는
차분하게 시작하여 점점 감정이 고조되어 마지막에 절정에 도달하는 구조로 만들었고,
창밖에 흩날리는 눈을 보며 춤추는 모습을 연상하는 〈성에〉는 춤곡 풍의 리듬과
다양하게 변형되는 아르페지오 음형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불어오는 바람과 추억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흐린 달빛 속〉과 하얀 달빛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노래한 〈외로운 내 그림자〉는 교회선법의 화성진행을 가져와서 감상적 음악에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작가의 결혼과 신혼생활을 회상하는 〈꽃반지〉에서는 소박한 마음과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게
민요풍의 선율을 사용했다.
뜨거운 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마지막 사랑〉은 서정적인 뮤지컬 발라드 풍의 음악으로
만들었고, 청춘의 갈망과 방황, 고독을 담은 〈젊음의 고독〉은 재즈풍의 화성과 하바네라 리듬을
결합하여 밤거리에서 추는 취한 춤의 느낌을 만들어냈다.
지난 삶을 반추하는 〈마지막 불꽃〉은 묵직하게 강화된 베이스와 그 위에서 휘몰아치는 음형들,
강렬한 화성진행을 통해 비장미와 서사미를 추구했다.
〈바람을 보았다〉에서는 시에서 언급되는 ‘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 2악장’을 전주, 간주와 후주에
결합하여 기악 소나타-노래라는 독특한 구성을 시도해 보았다.
마지막 사랑 _보도자료
4
마지막 곡, 창밖의 구름과 햇빛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구름 그림자〉에서는
찬란하게 펼쳐지는 피아노 음형 위에서 바이올린과 테너가 대화한다.
시와 노래, 그리고 춤을 사랑하는 김테레사. 이번 작업은 그의 내면세계가 시를 통해
내게 전달되고 내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어 다시 노래로, 음악으로 나오는 과정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를 계속 믿어주고 끊임없이 응원해줘서 이 큰 작업을 보람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시와 음악으로 맺어진 이 특별한 우정이 계속되기를….
작곡가 김인규
5
마지막 사랑_ 보도자료
Epilogue
세상의 소란 속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 나는 가벼운 열병을 앓으며 살고 있다.
내 사랑 안에서, 그리고 내 노래 안에서 고독한 언어로 노래를 만들며 삶을 산다.
한밤중에 도깨비, 나의 마지막 사랑 “음악”. 뒤늦게 만난 친구 우정 이렇게 깊어질 줄이야…
나의 위로와 동행이 즐겁고, 황홀하다.
나는 오선지 위에 연필로 작곡을 한다. 그리고, 하얀 캔버스에 커다란 붓에 유화물감을
듬뿍 묻혀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세월이 바뀌어 ‘AI’가 ‘작곡’도 하고 ‘詩’도 쓴다.
그 폭이 넓다. 이젠 작가 이름을 ‘사람’ 붙여야 하나? 씁쓰름하다.
에필로그를 쓰려니 과거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1970년 초 〈2001 Year〉란 영화를 봤다. 기억 중에 남자아이가 먹다 남은 초콜릿을 프로그램된
괴물 컴퓨터가 아이의 이빨 자국까지 똑같이 복제해 놓은 장면이었다. 오늘, 우린 어떤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내일의 기억이 어떻게 남을까? 그땐 2001년, 먼 미래인데 그래도 흥미가 생겨
“2001 Year”라고 제목하고, 100호짜리 유화를 그렸다. 현관에 걸어놨는데 그냥 스쳐들 간다.
몇 년 후, 베니스 비엔날레에 세자르가 자동차를 뭉개 커다란 덩어리(Mass)로 만들어
출품을 했다. 내 그림은 폐허가 된 지구의 한 귀퉁이에 부서진 자동차를 높이 쌓아 올린 그림이다.
그 위에 살아 있는 흰 나비를 한 마리 그렸다. 어른들은 못 보는 그 흰 나비, 아이들은 보았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등에 업혀 별을 보고, 전쟁을 보았다. 한국 전쟁 6.25. 무서움보단
아름다운 밤하늘(조명탄에 비친) 피난길 엄마 등이 좋았다. 이때의 기억을 살려 첫 번째 작곡집
〈전쟁과 아이〉를 출판했다. 2022년은 COVID가 진동한 해로 기억되겠지만, 나에겐 6.25. 전쟁
70주년의 의미가 절실하다. 6.25. 전쟁은 나에게는 커다란 바위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전쟁과 아이〉를 음악으로 엮었다. 인민군 퇴각. 중공군 오빠. 철의 삼각지 등은 유년의 망막에 맺힌
선명한 기억이다. 언젠가 철원 노동당 당사 무대에서 뮤지컬 공연을 꿈꿔본다.
마지막 사랑 _보도자료
6
2019년 봄 가나아트센터 개인전에서 그림과 음악의 콜라보를 선보였는데, “사랑과 열정의
파드되”라는 부제 아래, 그림 사이로 노래가 울려 퍼졌다. JAZZ+양혜정 트리오가 멋있는 연주를
하는 동안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나와서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림과 음악’의 환상적 어울림이라고
찬사를 받았다.
이제 〈마지막 사랑〉, 세 번째 작곡집을 출간하면서 되돌아보니, 황혼에 시작한 작곡은
금지된 사랑을 하듯 긴장되고 짜릿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시간은 바람처럼 흐른다.
언젠가 나 또한 저 바람 속의 재가 되어 떠날 것이다. 예술가는 살아 숨 쉬는 동안
잠들지 않는다. 한세상 살다 보니, 전쟁도 보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외치는 소리도 들었다. 젊음의
고독과 자유. 가끔은 어둠이 내린 무서운 고요와 적막이 온다.
이럴 땐 나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고, 아름다웠다.
김테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