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전집」 제8권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을 잇는 칸트의 네 번째 비판철학서로, “종교이성비판”이라 불릴 수 있는 저작이다. 옮긴이 김진의 해제는 프로이센의 역사 속에서 칸트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꼼꼼히 다루며 칸트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읽어낼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칸트의 전체 철학 체계에서 발전하는 이성의 역사적 변증법, 즉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판단력 이후 ‘종교적 이성’의 역사적인 전개 양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해낸다.
정치적 탄압에 맞선 칸트의 철학적 종교론
『실천이성비판』이 출간된 1788년,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총장에 재임되는 등 뛰어난 업적과 성과로 명성을 누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1786년 왕위에 오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전대의 계몽주의 정책을 억압하기 시작했고, 신학적 합리주의 노선에 적대적이던 뵐너가 국무·법무·종교 총괄 장관이 되며 이 영향이 칸트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뵐너는 루터파 교구의 종교 합리주의자들을 견제하는 종교칙령을 내렸다. 도덕과 종교를 주제로 삼는 모든 저술이 검열되기에 이르자 격분한 칸트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철학적 종교론 논문 네 편을 연이어 발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두 번째 원고가 검열되어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칸트는 계획했던 논문을 한꺼번에 단행본으로 출간할 방법을 모색했고, 신학부와 철학부 모두에게 ‘순수 철학 저서’라는 판정을 받는 데 성공하며 1793년 부활절에 맞춰 이 책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를 간행하게 된다.
하지만 출간 이후 이 책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종교론』 재판 간행과 프로이센의 종교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논문 「만물의 종말」 발표 등으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에게 경고 서한을 받은 칸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죽는 1797년까지 학문적 탄압을 받으며 학자로서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즉위하고서야 칸트는 다시 자신의 사상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의 철학적 종교론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위상을 회복하게 된다.
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 그리고 종교이성
이 책의 원제인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에서 독일어 ‘블로스’(bloßen)는 ‘외피가 없는’ ‘드러내놓은’ 또는 ‘오직’ ‘단지’ 등을 뜻하는 형용사나 부사로 쓰이는 단어다. 옮긴이 김진은 이 단어를 ‘오롯하다’라는 말로 번역했다.
앞선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이성(Vernunft)의 수식어로 ‘순수한’(rein), ‘이론적’(theoretisch), ‘실천적’(praktisch)이라는 ‘기능적’ 단어들을 사용해왔다. 이와 달리 ‘블로스’는 ‘이성 그 자체’를 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특성’보다는 ‘정도’의 뉘앙스가 강하고, 실제로 케임브리지판에서도 ‘단지’ ‘오로지’라는 뜻의 ‘mere’를 사용했다는 점에 근거해 옮긴이는 ‘모자람 없이 온전하다’라는 뜻의 ‘오롯하다’를 채택했다. 최종적으로 칸트의 저술 의도와 우리말 어순에 부합하게끔 ‘한계’ 앞에 ‘오롯한’을 두어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로 번역했다.
칸트의 이 책은 ‘네 번째 비판철학서’라고도 불릴 만큼 전작과의 유기성이 짙다. 이 책을 번역한 옮긴이 김진은 칸트의 비판적 사유 활동에서 순수이성의 대상 개념인 ‘이념’, 실천이성의 ‘최고선’과 ‘요청’ 사상이 칸트 철학 체계에서 이성의 이론적·실천적·종교적 사용이라는 일관된 맥락에서 발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 책에서의 ‘비판’은 이론적 논증 영역을 가리는 작업을 넘어서서, 『판단력 비판』에서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 그리고 개별성과 선험성을 매개하는 작업의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품행의 종교, 인류의 지향
도덕적 감수성(존엄성)을 가진 각 개인의 신앙은 영원히 지복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이루는 신앙이다. 이 신앙은 그러므로 또한 오직 유일한 신앙이고, 모든 교회신앙에서 마주칠 수 있는 신앙의 다양성에도 그 목표가 되는 순수한 종교신앙과 관련해서 보면 실천적인 것이다.
그에 반해 제의적 종교신앙은 노역신앙이자 보수신앙으로서 도덕적인 것이 아니므로
축복을 이루는 신앙이라고 볼 수 없다. (B168, 이 책 169-170쪽)
칸트의 종교는 오직 도덕적인 요청에서 비롯된다. 칸트에게 ‘최고선’은 도덕의 결과적 표상이며 이에 비례해 ‘행복해도 좋을 품격’이 완성된다. 단순한 도덕의 강제만으로는 그 이행에 한계가 생기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자에게 그 이행에 부합하는 행복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 최고 존재자가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인과성과 자유의 합목적성을 통일할 수 있는 전능한 유일신이다.
칸트는 성서의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대신 도덕적으로 해석해야 함을 강조했다. 창세기 내용 가운데 신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요구에서 보듯 문자만으로 해석했을 때 오류가 생길 여지가 있음을 반드시 유념하고 도덕적 의무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신앙에 도덕적 확신, 즉 ‘양심’을 요청했다.
이러한 그에게 율법과 계율, 교회의 교리와 제도를 중시하고 숭배하는 ‘교회신앙’은 배척의 대상이었다. 칸트는 선한 ‘품행의 종교’를 강조했으며, 신의 은총만을 바라는 희망의 갈구를 경계한다. 이러한 종교이성에 대한 칸트의 비판철학적 저술은 비단 기독교뿐만 아니라 도덕이라는 인류의 지향을 책임지는 이념적 지평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