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를 비롯한 중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채택한 중국 통사 교과서
중국 사학계의 ‘붉은 깃발’ 젠보짠이 해석한 중국사
《중국사 강요(전 2권)》는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를 다루는 중국 통사로 베이징대를 비롯해 오늘날 중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다. 또한 2010년 ‘동아시아 인문도서 100권’에 선정된 바 있는 현대의 고전이기도 하다.
1961년 중국 대학의 문과교재편찬위원회는 당시 중국 사학계의 선도자이자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젠보짠(1898~1968)에게 이 책의 주편을 제안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마르크스주의 신사학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인 젠보짠은 왕후장상의 삶이 시대의 주축인 것처럼 호도하는 봉건 시대 사서의 단점을 보완하여 계급투쟁의 시각에서 중국 역사를 서술했다. 따라서 이 책은 흥성과 멸망의 주인공이 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술뿐 아니라 기층 인민의 고단한 삶과 농민 기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소수민족의 삶에 대해서도 부지런히 기술하고 있다.
젠보짠, “내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를 바꾸고,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것”
1898년 후난성에서 위구르족으로 태어난 젠보짠은 일찍이 혁명에 투신해 1926년 국민혁명군에 가입했고, 1937년 중국 공산당원이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는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교수 겸 부총장 외에도 중앙인민정부 정무원 문화교육위원회 위원, 중국사학회 상무이사 겸 비서장 등을 역임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를 바꾸고,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것”일 뿐임을 강조했던 젠보짠은 1958년 전에 이미 중국 사학계의 ‘붉은 깃발’이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 신사학을 대표하는 또 다른 사학자 궈모뤄(郭沫若, 1892~1978)보다 중국 인문학계에서 영향력이 컸다.
당시로서 중국 대학 문과교재편찬위원회에서 젠보짠에게 대학 통사 교과서 집필을 맡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5년간 주편으로 이 책의 집필을 주도했다. 당시 집필에 참여했던 덩광밍(鄧廣銘)은 1979년 4권으로 초판된 《중국사 강요》의 ‘이 책에 관한 몇 가지 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집필과정 중 젠보짠은 글의 격식, 이론의 응용 및 사료 감별 등의 문제에 관해서 편집팀과 반복해서 상의했고, 최종적으로 원고를 확정했을 때에도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세심하게 퇴고했다. 이러한 모습은 주편으로서 그가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려는 정신과 역사과학에 대한 엄숙한 태도를 보여준다.”
젠보짠은 문화대학명 때 중국공산당에 침투한 ‘자산계급 학술권위’로 매도되어 이 책의 전권 출판을 보지 못하고 1968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78년 베이징대학 당위원회는 그를 복권시키고 누명을 벗겨주었으며 《중국사 강요》는 이듬해 덩광밍의 주도하에 전 4권으로 초판 출간되었다.
계급투쟁의 시각으로 집필한 젠보짠의 《중국사 강요》 완역
이 책은 젠보짠이 주편한 《중국사 강요》의 2006년 2차 개정판을 완역했다. 초판이 출간되고 40년이 흐르다 보니 개정판은 내용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1994년에 초판의 수정 재판이 출간되었는데 수정판과 2006년 개정판 사이에도 적지 않은 첨삭이 존재한다. 《중국사 강요》는 기본적으로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집필되었으나 개정판에서는 이 부분이 많이 약화되었으며, 대신 그 사이에 새롭게 연구된 성과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역사에서 출발하여 역사 사실로 문제를 설명하며, 과학적인 연구 자세를 토대로 삼는다는 젠보짠의 편찬 방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국사상사》《중국경전의 이해》등 다수의 중국 인문서를 번역해온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심규호 교수는 이 책의 장점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농민 기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기층 인민의 어렵고 고통스러운 삶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원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근 소수민족의 삶에 대해서도 부지런히 기술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왕조 시대순으로 집필되어 있기는 하나 기층 인민과 소수민족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이 책은 지방지나 사사로운 개인 문집의 역사 관련 논의도 과감하게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교재이다 보니 중국 당국의 의도와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책에는 사실 한국인이 보기에는 황당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고구려 유민으로 알려진 대조영에 대해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거란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자 속말부 수령 걸걸중상(乞乞仲象)이 말갈인과 고려인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이주했다. 그의 아들 대조영이 말갈과 고려인들을 이끌고 당나라 군사를 격퇴하고 말갈 옛 땅으로 되돌아갔다.” 대조영이 고려인의 후예가 아니라 속말 말갈인의 후예이며, 그가 세운 나라 발해 역시 ‘발해 말갈’로 말갈인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옮긴이 심규호 교수는 “이는 중국 동북공정의 중요한 논제이기도 한데, 과연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심 교수는 이 책의 특장점 중 하나인 소수민족에 대한 자세한 기술 역시 “또 하나의 중화주의라 할지라도 학습자의 입장에서 볼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힌다.
《중국사 강요》는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종교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역사서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출간된 이른바 오늘의 중국을 만든 사람들이 해석한 중국의 역사이다. 또한 1979년 출간된 이래 현대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역사서로서 이 책은 현재의 중국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들이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